도시 속 과학읽기

‘과학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도시

이탈리아 밀라노

밀라노의 거리는 날렵한 슈트에, 구두 발자국 소리조차 선명하다.
‘패션의 도시’ 밀라노는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의 주도로 끊임없이 독립을 꿈꾸는 도시다.
그 도도함의 저변에는 예술가이자 과학자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흔적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멜버른

설계와 발명을
멈추지 않았던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 동상

밀라노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기리는 과학 기술 박물관이 있다.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익숙했다면 다소 의외의 광경이다. 다빈치는 피렌체와 함께 밀라노가 활동의 주 무대였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예술가로 알려져 있지만, 다빈치는 공학·과학 등에도 두각을 드러낸 발명가이자 과학자였다. 화가로 활동하던 다빈치는 밀라노의 실세였던 스포르짜 공작에게 자신을 군사 기술자이자 공학자로 소개하며 밀라노에 입성한다. 그는 밀라노에서 전차, 대포, 요새 등의 설계에 나섰다. 그가 새의 비행에서 하늘을 나는 비행선에 대한 아이디어를 구체화한 곳도 밀라노였다. 다빈치는 밀라노에 약 20년간 머물며, 불후의 명작인 ‘최후의 만찬’을 그리는 와중에 실생활에 유용한 기계식 베틀, 평형추를 이용한 자동문, 기름 압착기 등을 고안하기도 했다.
다빈치는 40년 동안 관찰하고 실험한 수백여 건의 실험과정을 공책에 담았으며 이 중 약 6천 쪽이 남아 있다. 다빈치는 낙하산, 잠수 기구 등을 설계했으며 소용돌이, 밀물 등 물의 에너지에도 관심을 보였다. 해부학, 수학, 천문학 등에 능해 과학적 사고를 미술 작품과도 접맥시켰다.
밀라노시()는 과학자 다빈치의 업적을 높게 기려 그의 이름을 딴 ‘레오나르도 다빈치 국립 과학 기술 박물관’을 건립했다. 박물관에는 다빈치의 설계도를 바탕으로 제작된 수많은 모형물이 전시돼 있다.

세계유산 성당에 간직된
‘최후의 만찬’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흔적은 밀라노 곳곳에서 발견된다. 마젠타 거리의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을 간직한 곳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세나콜로’로 불리는 작품에는 예수와 열두 제자의 모습이 생생히 담겨 있다. ‘최후의 만찬’답게 그림은 성당의 식당 안에 걸려있다.
스포르째스코 성

‘최후의 만찬’은 작품을 그린 시간보다 7배나 긴 20여 년간의 복원작업을 거쳐 일반에 공개됐다. 훼손이 심했던 것은 다빈치가 당시 유행했던 프레스코화 대신 다양한 용매를 이용하는 ‘템페라’ 기법을 썼기 때문인데 이 역시 작품의 가치를 높이는 데는 큰 몫을 하게 된다.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은 밀라노에서 유일하게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이기도 하다.
브레라 지구의 스포르쩨스꼬 성은 다빈치가 건축에 관여한 건물로 한때 귀족의 요새로 위세를 드높였다. 현재 성 안은 중세의 미술품을 전시하는 박물관이 됐고 성 밖은 셈피오네 공원에 둘러싸여 있다. 네 명의 제자를 곁에 두고 선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동상 역시 오페라 가수들의 꿈의 무대인 스칼라 극장 앞 광장에 들어서 있다.

밀라노의 상징이자 역사인
두오모

밀라노의 품격을 더하는 ‘두오모 성당’

밀라노의 ‘콧대 높음’은 이탈리아의 실세 도시라는 점에서 도드라진다. 밀라노가 이탈리아에 편입된 것이 160여 년 전의 일이다. 낙후된 이탈리아 남부와는 다르다는 의식은 북부 밀라노 사람들의 저변에 깊게 배어 있다. 두오모 성당은 밀라노의 품격을 더하는 매개이다. 이곳 주민들은 두오모를 밀라노의 상징으로 섬기며 살아간다. 두오모는 1800년대 말 완공되기까지 500년의 세월이 필요했고, 수많은 건축가의 손을 거쳤다. 패션의 거리 한가운데 위치했지만, 그 당당함과 우아함은 밀라노를 빛내는 데 손색이 없다.
두오모의 외관은 성령의 불길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모습을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백색 대리석의 외부 벽면은 명인들의 손이 닿은 3,000여 개의 조각으로 장식돼 있다. 동서남북과 지하, 옥상 어느 곳에서 바라봐도 조각들은 섬세하고 찬란하다. 두오모는 독일의 쾰른 대성당 등과 함께 미술사적으로 가장 조화를 이룬 고딕 건축물로 인정받고 있다.
두오모 앞으로는 광장이 드넓게 열려있다. 광장 앞 비또리오 에마누엘 2세 아케이드는 유리 돔 밑, 카페와 쇼핑의 공간인데도 예술작품 속을 거니는 듯하다. 바닥이 프레스코화로 채워진 아케이드 옆에는 밀라노에서 제일 큰 라나센토 백화점이 들어서 있다.

명품 거리 오가는 빛바랜 트램

밀라노에서는 사람 구경이 다르고 별나다. 부와 예술미를 등에 업은 밀라노는 명품과 패션의 도시로 성장했다. 몬테 나뽈레오네, 델라 스피가 거리 등에는 세계 최고 디자이너들의 본점이 진을 치고 있다.
거리의 가게들은 판매장이 아니라 일종의 전시장이다. 문턱을 넘어서는 데는 옷매무새를 추스르는 매너가 필요하다. 밀라노가 다른 대도시의 명품 거리와 다른 점은 규모 때문이 아니다. 비좁은 골목에 늘어선 가게들의 마케팅 정책이 ‘고상함과 엄숙함’이다. 당당하게 패션 1번지로 칭송받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뜨라또리아(Trattoria), 오스떼리아(Osteria) 간판이 붙은 밀라노의 식당에서는 와인과 함께 품격 있는 식사가 가능하다. 두오모 인근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루이니(Luini) 숍은 빵 안에 치즈와 토마토소스를 양념해 크로켓처럼 만든 독특한 향과 맛의 루이니를 제공한다.
패션의 도시는 도심을 오가는 빛바랜 트램으로 한결 고풍스러워진다. 트램은 내부도 나무로 단아하게 치장돼 있다. 덜컹거리는 투박한 트램을 타고 명품·예술·과학자의 거리를 누비는 것은 독특한 감동을 선사한다.
‌밀라노의 투박한 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