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나눔

장애인

복지의 눈

그동안 장애인들은 존재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야 마땅한데도 불구하고 서비스, 교육, 치료, 훈련 등 도움이나 시혜의 대명사처럼 불려왔던 것이 사실이다.
인간은 누구나 삶의 목적을 행복에 두고, 복지를 추구하며 생활한다. 동양고전의 바이블이라 할 수 있는 명심보감이나 서양인들의 사고에 큰 영향을 미친 성서에 나타난 전통적인 복지에 대한 개념은 절대자 혹은 보편적인 가치로서의 하늘이 인간에게 무엇인가를 보상으로 베푸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근세 이후 발전하게 된 장애인 복지에 대한 성격 역시 시혜의 성격을 띠고 발전해왔다. 즉 장애인에게 마땅히 필요한 사회적 지원이나 지지 및 배려가 권력자나 기타 힘 있는 집단이 일방적으로 베푸는 시혜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으며, 이 정도에 만족하면서 당연시해오고 있다. 이러한 경향성은 문화의 세기로 지칭되는 오늘날에도 은연중에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뿌리 깊게 스며있다.
장애인에 대한 복지의 초점은 누구에 의해 주어진다는 측면보다는 장애인 각자가 어떻게 하면 사회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건강하게 담당할 수 있는가에 대한 능동적인 측면을 중요시해야 한다.
복지의 철학적 개념은 복지의 실체인 자아가 삶의 기회 운동을 통해서 생활을 전개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개체의 생명력 생성 조화운동이라고 할 것이다. 여기에서 개체의 생명력이란 곧 존재함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무엇이 존재한다는 것은 어딘가에 있다는 것만이 아니라 어디에 속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은 곧 어디에 있는 다른 존재들과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 세상에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존재 내지는 누구 또는 무엇과도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 존재는 없다. 그중에서도 특히 사람의 존재를 존재답게 해주는 소속과 관계는 소통에 바탕을 둔다. 타자와 소통 없이는 소속도 관계도 없다. 그런데 그 소통은 대개 기호(記號)와 인지(認知)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기호는 존재의 발신이며 인지는 타자의 수신이다.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은 남에게 기억되는 시간이 곧 살아있는 시간이라고 한다.
그러면 대표적인 사회적 소외계층으로 분류되는 대다수 장애인의 삶 살이는 어떻게 기억되어야 할 것인가. 수많은 속담과 속어 속에서 빗대어지고 빈정거림을 받으면서도 끝없이 발신을 보냈던 그들의 삶 살이가 타자의 주의 소홀이나 수신 거부로 인해 파괴되고 지워져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발신과 수신이 원만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관계 속에서 장애인복지는 참여와 평등보다는 보호와 시혜의 강자적 논리만이 적용되고 실천될 뿐이다.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의 삶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을 보인 198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 교육 및 복지정책과 구체적인 프로그램의 실천 방향을 설정하는 과정에서 장애인 당사자의 치열한 발신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신 노력은 소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발신과 수신이 어느 한쪽의 일방적 요구가 아닌 쌍방적 합의를 이루며 서로 원활한 소통을 이룰 때 우리는 비로소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복지 = 행복 추구’라는 등식에 유념해야 한다. 여기서 행복 추구의 형식상 주체와 객체를 바로 복지종사자와 장애인 당사자로 구분하기 쉬우나, 실천적 의미에서는 인간화를 위한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인간화의 시작은 복지종사자가 장애인 당사자의 요구를 수렴하려는 의지를 갖는 것이 첫 번째다. 두 번째는 더욱 적극적으로 장애인 당사자의 관심을 파악하고 드러내어 실천해주려는 몸부림이 있어야 하며, 마지막 단계에서는 함께 행복해하는 공감의 수신과 발신이 자유롭게 이루어져야 한다.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은 스스럼없이 서로의 처지를 바꿔보며 이해하려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관조가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인간화란 삶의 목적을 행복 추구에 둔다는 뜻이며 행복하다는 것은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하는 복지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장애인은 물론 장애인복지 관련 종사자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주변 환경이나 자원 및 처우는 그리 만족할 만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복지에 대한 눈을 분명하게 떠야 하는 것은 인간은 상대를 통해야만 나를 확신할 수 있는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과거 경제적 빈곤에 의한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는 복지사회실현을 위한 제도개선에 주력했으나 이제는 문화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이 오늘날 국가의 사회적 역할로 변화되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복지의 선명한 눈을 통해 복지의 삶, 곧 문화적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장애인을 지원하는 노력은 현실적인 복지국가 건설에 직접적인 과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