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과학읽기

AI와 인간, 사랑에 빠지다
기계와 인간 감정 연결고리
'AI'가 잇는다…

영화 'Her'

영화 'Her' 포스터

사랑.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감정일까. 더 이상 인류만이 향유할 수 있는 특별한 권리가 아닐 수 있다. 영원할 것 같은 인간 사이 사랑의 종말이 서서히 고개를 든다. AI(인공지능) 영화 'Her'을 보면 사람이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진다. 남자 주인공 시어도어(Theodore)가 형체 없는 인공지능 사만다와 일상 모두를 공유한다. 공허한 삶을 살아가던 인간이 인공지능과 마음을 나누며 상처를 위로받고 진정한 사랑을 이뤘다고 믿는 이야기 자체가 우리 삶 속 '관계'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던진다.
'디지털 소울메이트'는 더 이상 공상과학 소설의 대상이 아닌 듯하다. 기계가 인간의 지능과 감정을 따라잡고 있는 과학기술 세계가 현실로 떠오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미 인간과 로봇의 관계를 합법화하는 문제로 고심할 날이 머지않았다는 전망을 내놓는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은 기계가 인간의 모든 능력을 뛰어넘는 특이점(Singularity)의 시대가 곧 열릴 것이라고 예측하고 옥스퍼드·예일대학은 2047년경 인간 능력과 전반적으로 유사한 AI가 탄생할 것으로 전망한다.
과연 지금의 AI 감정지능 수준은 어디까지 왔을까. AI와 인간의 관계는 앞으로 어떻게 변할까. 이 둘의 관계가 이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켜나갈지 한 번 생각해보면서 'Her'이라는 영화를 마주해 보자.

사만다처럼 소통하려면? AI끼리 학습하며 진화

영화 'Her'은 2014년 개봉했다. 우리나라에서 2017년 핫이슈로 떠오른 알파고 쇼크 이전의 영화다. 영화에서는 AI 기계학습·강화학습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AI 연구자들은 어떻게 그 이른 시기에 AI와 관련된 강화학습에 대한 기술적 상상력을 구체적으로 영화에 녹여낼 수 있었을까 신기해한다. 가령 사만다가 주인공의 메일함이나 편지함, 주소록을 순식간에 정리해 준다던지 필요한 정보가 있으면 관련 문헌을 순식간에 찾아 알려주는 장면들이 등장한다.
사만다와 현재 개발된 AI를 비교해 보면 언어를 학습하는 영역의 '텍스트마이닝' 연구와 같다. 연구자들은 사만다의 통번역 소통 수준을 10이라고 봤을 때 현재 통용되고 있는 서비스는 3~4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평가한다. 현 수준은 일반 대중이 흔히 쓰는 내비게이션 정도 수준이기 때문에 단편적으로 기술들이 어느 정도 완성돼 있긴 하지만 이를 사만다처럼 융복합 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아직 실현 가능하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영화 후반부를 보게 되면 AI들끼리 서로 공부하고 이야기하면서 진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실제 가능한 이야기다. 좋은 예가 알파고다. 알파고는 이세돌과 대국을 벌인 뒤 중국 바둑선수 커제와도 한 판 승부를 겨뤘다. 당시 AI는 알파제로였다. 알파고와 알파제로의 가장 큰 차이는 기보(바둑을 둔 내용의 기록)를 학습했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어느 정도 만들어 놓은 답을 가지고 학습을 했기 때문에 정해져 있는 규칙 안에서 연습을 했다. 알파고에서 알파제로로 넘어가는 과정에서는 컴퓨터끼리 대결을 시켰다. AI끼리 이겨나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한 학습을 전개한 것이 전형적인 강화학습의 예다.
사만다는 과거 정보를 사용해 현재·미래의 입력에 대한 신경망 성능을 개선하는 딥러닝 신경망 RNN(Recurrent Neural Network)을 비롯해 여러 AI 관련 기술을 갖췄다. 덕분에 사만다는 전 세계에 있는 지식을 빠른 시간에 섭렵하고 주인공과도 소통하면서 또 다른 사람들과도 소통한다.
시어도어는 사만다가 자기처럼 교감하는 남자가 자기가 유일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좌절한다. 자기처럼 사만다를 OS로 사용하는 사람만 8,316명. 사만다는 시어도어를 정말 사랑한다면서 자기 말고도 641명과 사랑에 빠져 있다고 말한다. 시어도어는 결국 오열한다.
이제까지 겪어보지 못한 진정한 사랑을 느끼는 시어도어

주인공은 AI를 어떻게 사람처럼 느낄까? '앨런 튜링 테스트'에 관하여

천재 수학자이자 암호해독가인 앨런 튜링(Alan Turing, 1912~1954)이 기계의 사고력을 증명하기 위한 기준을 고안했다. 일명 앨런 튜링 테스트다. 앨런 튜링이 1950년 발표한 '기계도 생각할 수 있을까(Can Machines Think?)'라는 논문에서 이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인간의 뇌를 닮은 프로그램을 구상한 셈이다. 훗날 이 프로그램이 바로 우리가 모두 아는 AI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7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튜링 테스트는 AI의 기본 개념이 되고 있다.
앨런 튜링은 기계와 대화를 나눌 때 기계인지 사람인지 구별할 수 없다면 기계가 인간처럼 사고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어도어가 사만다와 전화 통화를 하거나 대화하는 과정을 보면 평범한 사람들과 소통한 것으로 착각할 정도이다. 기술적 영역에서 'Her'은 앨런 튜링 테스트를 통과한 인공지능의 이야기인 셈이다.

AI와의 교감… 세계 과학계의 중요한 화두

영화 'Her'처럼 앞으로 사람은 AI와 얼마나 많은 교감을 하고 교류할 수 있을까. 공학 계열의 연구자뿐만 아니라 심리학, 사회학 등 분야를 막론하고 여러 학제 간 연구자들이 AI와의 교감 연구를 주목하고 활발한 연구를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