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속 과학읽기

종교와 과학기술의
요람이 된 도시

이스라엘 예루살렘

이스라엘 예루살렘은 다양한 종교가 혼재된 땅이다.
예루살렘을 오가는 사람들의 행색과 풍습만 봐도 종교색이 다채롭다.
'종교적 성지'인 예루살렘은 과학기술의 태동과 융성을 묵묵히 지켜 본 도시이기도 하다.

과학기술 이끈
예루살렘 히브리대학

예루살렘 전경

종교색 짙은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재건과 함께 과학기술의 성장을 이끈 도시다. 이스라엘 초대 대통령인 하임 바이츠만은 유기화학과 생화학을 다루던 화학자였다. 예루살렘의 히브리대학은 하임 바이츠만의 주도로 1918년 개설한 연구기관에서 시작됐다. 화학, 미생물학, 유대민족 연구가 대학의 주요 목적이었고 상대성이론의 대가인 아인슈타인 또한 히브리대학 초대 이사장과 교수로 지냈다.
유대인이자 과학자인 바이츠만과 아인슈타인은 이스라엘 재건의 단초로 대학을 세우는데 주력했고 불모지의 땅에서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 결실로 문을 연 예루살렘의 히브리대학과 하이파의 테크니온 공대는 이스라엘 과학 발전의 단초 역할을 했다. 히브리대학은 전 세계 대학 중 최초로 기술 이전회사인 '이슘'을 설립해 1만여 개의 특허를 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스라엘은 스타트업 기업들의 요람으로 7,600여 개 스타트업 회사들이 이스라엘에 있으며 1인당 벤처 창업 비율도 세계 1위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나스닥에 상장된 스타트업 회사는 미국, 중국에 이어 이스라엘이 3위에 올라 있다.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USB 플래시 디스크는 이스라엘이 세계 처음으로 특허를 받았다. 플라스틱 자판 없이 활용하는 레이저 프로젝션 키보드의 최초 발명국 역시 이스라엘이다. 황무지에 기반을 둔 국가이기에 하수와 바닷물을 식수와 농업용수로 환원하는 기술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인구 880만 명인 이스라엘 출신의 노벨상 수상자는 12명에 달한다.

낯선 이들이
성벽 안에 공존하는 도시

예루살렘은 궁극적으로 공존과 화해의 도시다. 구시가의 성벽 안에는 유대인, 기독교인, 무슬림, 아르메니아인 등이 함께 거주한다. 예루살렘 박물관 벽 한편에는 'GATHERING OF STRANGERS(낯선 이들의 모임)'이라는 문구도 큼지막하게 적혀 있다.
이스라엘은 전 세계 유대인을 받아들이는 정책을 펼쳐왔고 러시아, 모로코, 독일, 스페인, 에티오피아, 인도 등에서 이주민이 찾아 들었다. 이스라엘의 관문인 벤구리온 공항 역시 러시아 유대인 출신 초대 총리의 이름을 빌렸다. 모스크바행 왕복 비행기가 북적이고 유대인 무리에서 제3세계 언어가 흔하게 들리며 식당 한 곳에서 각국의 다채로운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것에 의문이 풀린다.
동·서 예루살렘의 경계이자 중심인 구시가는 유대인과 무슬림, 관광객 등이 오가는 게이트(성문)가 서로 다르다. 구시가 서쪽에는 '통곡의 벽'으로 불리는 유대교인들만의 성스러운 공간이 들어서 있다. 벽에 기대 눈물을 흘리고 토라 경전을 읽으며 기도하는 장소는 유대인 남성들의 성인식이 열리는 바르미츠바 때는 축제의 현장으로 변신한다. 동예루살렘은 무슬림 주민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예루살렘 성벽 안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

각국의 다채로운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예루살렘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 성지
'바위돔 광장'

구시가 바위돔 광장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세 종교의 중심지로 추앙받는다. 어깨를 맞대고 지나야하는 비좁은 구시가 골목을 감안하면 바위돔 광장의 내부 규모는 짐작을 뛰어넘는다. 면적만 구시가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광활한 땅이다.
이곳에 얽힌 역사와 전설은 수천 년 세월의 종교와 전쟁까지 함축돼 있다. 기원후 70년 로마인들은 광장에 있던 유대교 신전을 파괴했고 유대인들이 세계 각지로 흩어지는 '디아스포라'가 시작된다. 그 후 신전터에 바위돔(황금사원)이 세워졌고 십자군의 점령 때는 성당으로 쓰이기도 했다.
이슬람의 재탈환 이후 바위돔은 무슬림 사원으로 천년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무함마드가 날개달린 말을 타고 천국 여행을 시작했다는 이슬람교의 세 번째 성지가 예루살렘 한 가운데 있다는 자체가 사실 이채로운 대목이다.
바위돔 광장 반대편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시신이 안장됐던 성묘교회와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걸었다는 슬픔의 길 '비아 돌로로사'가 북적이는 인파 속에 가지런하게 이어진다.
세 종교의 중심지, 바위돔 광장

사막보다 낮고 아득한
사해와 소돔산

‌‌타락한 자들의 도시 '소돔'의 소돔산

예루살렘과 요르단의 경계에는 사막과 사해가 완충지대다. '소금 바다'인 사해까지 네게브 사막을 가로지르는 길은 유목민인 배두윈족의 삶터다. 해수면 429m 아래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 사해는 바다 같은 호수로 쓸쓸하게 들어서 있다. 아득한 물길 너머로는 요르단의 산줄기다. 염도는 바다의 5배. 물고기가 살지 않으니 호숫가 마을, 나룻배, 강태공은 없다. 진흙을 바르며 물위에 둥둥 뜨는 체험에 신기해하는 이방인만이 사해의 파문을 만들어낸다.
사해 인근, 산중 요새인 마사다에 얽힌 사연은 무릇 비장하다. 로마인이 예루살렘을 폐허로 만들었을 때 이곳에 피신해 살던 900여 명의 유대인들은 항복보다는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이방인들에게 마사다는 사해를 조망하는 훌륭한 포인트로 알려져 있다.
사해를 따라 달리면 타락한 자들의 도시 '소돔'의 소돔산이다. 현실의 소돔산은 오프로드 트레일과 달빛 바이크 기행 등으로 앳되게 포장을 바꿨다. 소돔산 일대에는 가끔 하이에나와 늑대가 전설처럼 출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