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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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월드' 속 지구?  
'인터스텔라' 속 지구?

영화 '노 웨이 아웃', '언터처블'로 스타의 반열에 오른 케빈 코스트너는 1990년 개봉한 '늑대와 춤을'이라는 작품으로 영화 인생의 최절정기에 올랐다. 그 이후로도 대박까지는 아니더라도 평이한 영화들의 주인공으로 나왔는데 그를 이른바 '폭망'의 길로 들어서게 만든 작품이 있었으니 바로 1995년 개봉한 SF영화 '워터월드'이다.
요즘도 가끔 TV나 케이블 채널에서 추억의 영화로 틀어줄 때가 있는데, 보고 있노라면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당황스러운 영화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유일하게 한 가지 높이 평가할만한 부분은 상상력이다. '인간에 의한 자연 훼손(당시만 해도 지구온난화는 익숙지 않은 개념이었다)'으로 북극의 얼음이 모두 녹아 육지 대부분이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 인간들은 물 위에서 생활하는 모습이 나온다. 할리우드 SF영화의 결말들이 항상 그렇듯 이 영화에서도 주인공 케빈 코스트너가 인류의 희망이 된다(실제 지구온난화가 영화 속처럼 심각한 상황이라면 케빈 코스트너가 아니라 케빈 코스트너 할아버지가 오더라도 영웅 한 명만으로 인류를 구원하는 일은 절대 없을 거라 확신한다).
케빈 코스트너가 주연한 1995년 SF영화 '워터월드'의 한 장면. 영화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북극 얼음이 모두 녹아 육지 대부분이 바다 밑으로 가라앉은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IMDb 제공)

SF의 무덤 한국에서 천만 관객을 동원한 2015년 영화 '인터스텔라'에서는 온난화로 지구 곳곳이 사막화돼 모래 폭풍이 일상화된 모습이 묘사되고 있다.(IMDb 제공)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2015년에 개봉한 SF영화 '인터스텔라'는 블랙홀, 상대성이론과 같은 어려운 물리학 이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에도 국내에서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SF영화의 무덤이라는 한국에서 천만 관객을 넘긴 힘은 다름 아닌 '교육열'이었다는 뒷얘기가 있다. 2017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킵 손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 교수가 영화 자문에 참여했다는 점과 어려운 물리학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영화라는 미심쩍은 입소문에 교육에 극성인 한국 부모들이 아이들의 손을 끌고 영화관을 찾았다는 것이다(물론 영화를 본 부모나 아이들 모두 물리학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 영화에서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화로 사막화된 지구의 모습이 등장한다. 모래 폭풍이 수시로 불어 닥쳐 문을 꼭꼭 닫고 있어도 집 안 전체에 모래가 내려앉고 사람들은 늘상 천식과 기관지염을 앓는다.
그런데 현재와 같은 지구온난화가 계속될 경우 해수면의 급격한 상승, 극한 기후의 일상화로 인해 워터월드나 인터스텔라 속 지구의 모습이 가까운 미래에 현실화 될 것이라는 충격적인 보고서가 지난 8월에 발표됐다.
기후 변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지난 7월 26일부터 8월 6일까지 온라인으로 제54차 총회를 열고 'IPCC 제6차 평가보고서(AR6) 제1실무그룹 보고서'를 승인해 8월 9일 발표했다. 지구 평균온도가 산업화 이전에 비해 1.5도 높아지는 시점을 지구온난화를 막을 수 있는 마지노선으로 보는데 이번 보고서에서 그 시점을 2040년이라고 밝혔다. 이는 2018년 IPCC에서 발표한 특별보고서 '지구온난화 1.5도'에서 제시된 2052년보다 12년가량 더 빨라진 것이다. 이와 함께 2013년 발표된 제5차 평가보고서(AR5)에서 '온난화는 명백한 사실'이라고 표현했던 것을 이번 보고서에서는 '인간의 영향에 의한 온난화는 명백한 사실'이라고 명시했다. 인간이 지구환경 파괴의 핵심이라는 것을 명확히 한 것이다.
IPCC에 따르면 기후변화에 있어서 인간의 영향이 거의 없었던 산업화 이전 시기(1850~1900년)와 비교해 최근 10년(2011~2020년) 동안 전 지구 지표면 온도는 1.09도 상승했다. 2013년 보고서에는 산업화 대비 0.78도 상승했다고 밝혔는데 불과 7년이 지난 지금 0.31도나 더 높아졌다는 것이다. 이 같은 속도라면 1.5도 상승 돌파 시점은 이번 보고서에서 예측한 2040년보다 더 빨라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 IPCC는 산업화 이전 시기에는 50년에 한 번 나타날까 말까한 폭염이 지구 평균기온의 약 1도 상승한 현재는 4.8배나 자주 나타나고 있다. 1.5도 상승할 경우 폭염 발생빈도는 8.6배, 4도 상승하면 39.2배 늘어날 것으로 예측됐다. 다시 말하면 50년에 한 번 꼴로 나타났던 폭염이 현재는 10년에 한 번, 1.5도를 넘어갈 경우 5~6년에 한 번 꼴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4도가 넘어가게 되면 2018년이나 올해 같은 폭염이 여름철 일상적 날씨가 되고 매년 극값을 갱신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지금까지 배출한 온실가스의 양이 엄청나기 때문에 강도 높은 배출 억제조치를 취하더라도 2040년이 되면 1.5도 상승을 막을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IPCC는 밝혔다. 그렇지만 강도 높은 억제조치를 취한다면 금세기 말(2081~2100년)에는 다시 1.5도 이하로 상승폭을 억제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현재 수준을 유지하거나 경제발전에 초점을 맞추고 도시 중심의 무분별한 개발을 확대해 온실가스를 더 많이 배출할 경우 지구 평균 기온은 산업화 이전 대비 최대 5.7도나 상승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최근 과학자들이 전 세계 25개 메가시티가 온실가스 배출의 52%를 내뿜고 있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특히 중국과 인도 대도시의 온실가스 배출은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사이언스/AP 제공) 

한 남성

1901년부터 2018년까지 지구 평균 해수면은 0.2m 높아졌다. 해수면 평균 상승 속도는 1901~1971년에는 연간 1.3mm이었지만 2006~2018년에는 연간 3.7mm의 속도로 2.85배 가량 빨라졌다. 특히 온실가스 배출을 억제하지 않고 최악의 시나리오를 따라간다면 2100년까지는 지구 평균 해수면은 최대 2m, 2150년까지는 5m가 상승하게 된다는 것이다. 워터월드의 현실화이다.
이번 보고서가 이야기하는 것은 명백하다. 한가하게 온실가스 배출 억제를 위해 어떤 발전방식을 따라야 한다고 논의하고 싸울 때가 아니라 죽을 듯 힘들더라도 강도 높은 조치를 취하라는 것이다.
'나만 아니면 돼' 또는 '더위는 참으면 되지, 바보야 경제가 먼저야'라는 생각을 한다면 자식들의 폐 속에 깨끗한 공기 대신 모래바람을 불어 넣어주겠다는 것이며, 단단한 땅 위의 집이 아니라 수상가옥이나 배 위에서의 삶을 살게 하겠다는 어리석은 생각이자 인류 대멸종을 위한 강철 같은 의지를 드러냄과 다름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