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속 과학읽기

장영실이 만든

천상의 물시계 - 옥루

세종이 꿈꾼 유토피아

자격루
자동 물시계 자격루를 만든 장영실은 세종을 위해 또 하나의 특징적인 자동 물시계를 제작했다. 시간을 알려주는 자격루와 천체의 운행을 관측하는 혼천의를 결합한 천문기구를 만들고자 한 것이다. 자격루와 혼천의, 이 두 가지를 결합하면 24절기와 계절에 따른 태양의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이를 통해 국가는 백성들에게 계절에 맞춰 씨를 뿌리고 수확하는 시기를 알려줄 수 있었다.
지금도 국민들 입장에서는 제일 중요한 것이 경제 문제 해결일 것이다. 전통시대에도 역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는 왕이 최고의 왕이었다. 백성들이 모두 잘 먹고 잘사는 나라. 이를 위해서는 하늘과 땅, 인간이 하나로 연결되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라 생각했고, 천문은 이것을 이루어주는 장치였다. 천문은 그래서 중요했다. 천문은 곧 경제였던 것이다. 세종이 꿈꾸는 왕도정치가 이뤄지는 바탕이 곧 천문이었다.
자격루가 완성된 지 만 4년 후인 1438년(세종 20년)에 장영실은 옥루를 완성하였다. 옥루가 완성되자 세종은 경복궁 천추전 서쪽 편에 흠경각을 지어 그 안에 설치하도록 했다.
옥루의 정식 명칭은 흠경각루이다. 흠경각루라는 이름 보다 옥루라는 이름을 더 많이 사용하는 이유는 김돈의 <흠경각기>에 나오는 ‘옥루기륜’이라는 표현 때문이다. 옥루기륜의 말뜻은 옥루로 기륜을 회전한다는 의미이다. 옥루는 단지 물시계를 말한다. 따라서 옥루는 흠경각루의 별칭 정도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는 자격루의 공식 명칭인 ‘보루각루’가 있음에도 별칭을 사용하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전통사회에서 물시계의 유수관을 사용할 때 부분적으로 옥()으로 마감하여 내구성을 높였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옥루는 임금을 상징하는 의미도 있겠지만, 재질적인 특성이 반영된 명칭일 수 있다. 또한 흠경각이라는 다소 어려운 표현 보다 옥루는 누구나 들으면 금방 알아듣는 편리한 면도 있다.
흠경각루는 3단의 대·중·소 파수호로 구성된다. 파수호는 물을 공급해준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파수호로부터 공급받는 물 항아리를 수수호라고 부른다. 보루각루(자격루)는 부전을 갖춘 2개의 수수호가 있지만, 흠경각루(옥루)는 수수호를 갖추고 있지 않다. 물시계 보다는 천문시계적 성격이 강했기 때문일 것이다.

옥루는 어떻게 움직였을까

문헌 기록을 바탕으로 복원된 옥루의 모습(국립중앙과학관)

옥루는 자격루와 같은 물시계 장치뿐만 아니라 태양의 운행 등 천체의 변화를 보여주는 장치까지 포함한 이른바 천문시계라 할 수 있다. 동지, 춘분, 하지, 추분까지 알려주는 자동 종합 물시계이기도 했다. 옥루는 지금 남아 있지 않아 아쉽게도 그 형태를 완벽히 알 수는 없다. 전해지는 기록으로 추측해 볼 뿐이다. 다행히 문헌에 남아 있는 옥루에 대한 기록에 근거하여 최근 국립중앙과학관에서 복원되어 전시하고 있다.
옥루는 어떻게 움직였을까. 자동장치가 있었다. 이 장치는 자격루와 같이 물의 부력을 이용하였다. 그 기계장치의 핵심은 ‘옥류기륜’이다. 이를 고안한 사람은 장영실과 이천이다. 옥류기륜은 눈에 보이지 않는 속에 들어가 있는 장치였다. 겉으로만 보면 옥루는 땅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태양과 그에 따라 시간을 알려주는 각종 인형들이 파노라마처럼 움직이는 천상의 공간이었다.
옥루에는 높이 7자 정도의 종이로 만든 산이 있었다. 7자는 오늘날로 치면 약 2m 12cm쯤 된다. 이 산은 인간이 사는 지구를 포함한 우주를 표현한 것이다. 이 종이산은 민둥산이 아니다. 산에는 나무와 풀이 심어져있고 짐승들과 새들이 노닐고 있는 아름다운 산이다. 계곡 사이로 폭포가 흐르고 산 동서남북으로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의 경치가 펼쳐져 있다. 산을 중심으로 탄환만한 크기의 ‘태양’이 매일 이 산을 한 바퀴씩 돌게 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태양이 동지와 하지 등 계절마다 높이가 달라지듯이 실제에 맞춰 높이도 달라지게 운행했다고 한다.
금으로 만든 태양이 계절에 따라 높이가 변한다는 것은 실제 하늘에서 벌어지는 태양의 운행을 말한 것이다. 이러한 운행이 잘 반영된 천문의기가 혼천의이다. 옥루의 산 위에는 적도환과 황도환이 구동하며 황도환에 태양을 장치하여 운행시킨 것으로 보인다.
사신(四神)·십이신(十二神)·고인(鼓人)·종인(鍾人)·사신(司辰)·옥녀(玉女) 등 옥루에는 많은 인형들이 있었다. 이들 인형들과 각종 장치들이 사람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저절로 치고 운행하는 것을 본 세종은 마치 귀신이 시키는 듯하다며 감탄했다. 신기한 옥루를 보는 사람마다 놀라며 도무지 어떻게 작동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며 이상하게 여길 정도였다. 세종은 위로는 하늘 도수와 부합하여 털끝만큼도 어긋남이 없으니 이를 만들은 계교가 참으로 기묘하다 감탄하였다.

옥루에 담긴 세종의 통치 철학

옥루에는 기계장치와 별도로 군왕이 나라를 어떤 마음으로 다스려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기기가 있었다. 이른바 “기울어진 그릇”이다.
옥루의 종이산 남쪽 평지에는 기울어진 그릇이 있었다. 기울어진 그릇이라 하여 ‘기기(敧器)’라 부른다. 이 그릇 옆에는 관원모습을 한 인형이 있어 금으로 만든 물병을 가지고 물을 따른다. 흘러내리는 물을 이용하여 약수터 물처럼 끊임없이 흐르는데 그릇이 비어 있으면 한쪽으로 기울고, 물이 적당히 차면 그릇이 반듯하게 세워지고 가득차면 엎어진다.
기기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순자』라는 책에 최초로 등장한다. 공자가 노나라 환공의 사당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공자는 신기하게 움직이는 이 그릇을 보고 사당지기에게 무슨 그릇이냐고 물었다. 사당지기는 환공이 자리 오른편에 두던 그릇이라고 대답했다. 공자는 “이 그릇은 비어있으면 기울고 절반쯤 차면 바르게 놓이며, 가득 차면 엎어진다”고 들었다면서 제자인 자로를 시켜 물을 떠오게 하였다. 이윽고 이 그릇에 물을 담아 실험해보니 실제로 잘 작동되는 것을 확인했다. 기기를 통해 임금은 권력이 넘치지도 않게 모자라지도 않게 처신하도록 하는 수단으로 삼았던 것이다.
오늘날 흔히 쓰는 ‘좌우명’이라는 말은 바로 공자가 기기를 자신의 오른편에 두어 항상 판단의 기준으로 삼았다고 하는 이 일화에서 나온 것이다.
옥루는 1438년(세종 20년) 1월 7일에 완성되었다. 역시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인물은 장영실이다. 장영실은 세종이 백성들을 위해 공정한 통치를 펼칠 수 있도록 그림 속의 ‘기기’를 실제 작동하는 모델로 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