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속 과학읽기

독일 지폐에 실린 여성 곤충학자의 도시

프랑크푸르트

‘뱅크푸르트’, ‘유럽의 맨해튼’은 금융과 상업의 중심지인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일컫는 별칭들이다.
도시를 한 꺼풀 들추면 프랑크푸르트는 현대와 과거, 예술과 과학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중세의 광장 너머 대문호 괴테의 흔적이 서려 있고 최초의 여성 곤충학자의 숨결이 닿아 있다.
프랑크푸르트

곤충의 변태 입증한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EU 통합 전 독일의 500마르크 지폐 앞면을 장식했던 인물은 누구일까. 독일의 수많은 역사적 거장을 대표해 주인공인 된 인물은 곤충의 변태를 입증한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이다.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은 최초의 여성 곤충학자이자 생물학자로 1647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났다. 양잠업이 성했던 프랑크푸르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에게 누에는 주된 관심사였다. 그녀는 13세 때부터 자신이 채집한 벌레와 식물을 관찰해 그림으로 남겼다.
17세기까지 해충류는 썩은 흙에서 발생하는 ‘악마의 산물’로 간주됐으며 보수학자들은 곤충의 변태 또한 믿지 않았다.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은 알에서 시작되는 변태 과정을 관찰한 뒤 세세하게 그려 애벌레와 나비가 별개가 아닌 하나의 존재임을 입증했고 책으로 발간했다. 한 곤충의 생태만 수년간 연구하고 관찰하기도 했다. 그녀는 ‘파브르 곤충기’로 유명한 프랑스의 장 앙리 파브르 보다 200년 앞선 곤충학자로 알려져 있다.
아버지와 의붓아버지 모두 화가였기에 예술 감각을 이어받은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은 곤충의 생활을 작품으로 그려내 ‘사이언스 아트’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고 다양한 곤충관련 저서를 남겼다. 추억이 된 500마르크 지폐에는 그녀와 함께 식물과 곤충의 세밀화가 담겨 있다.

황제의 대관식이 거행된
뢰머 광장

뢰머 광장에 앉아있는 사람들

프랑크푸르트는 ‘화려한 나비’ 같은 반전의 모습을 간직한 도시다. 구도심 뢰머 광장, 괴테하우스 등은 사색을 돕는 매개들이다. 뢰머 광장은 황제의 대관식이 열렸던 프랑크푸르트의 역사와 마주하는 공간이다. 광장에는 한때 로마인들이 주둔해 ‘뢰머’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세모지붕과 격자무늬 건물들이 만들어내는 동화 같은 풍광에 친밀감이 전해진다. 황제의 대관식이 펼쳐졌던 시청사 건물의 2층 방에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 52명의 실물 초상화가 내걸려 있다. 프랑크푸르트는 13세기부터 유럽 상인들이 한데 모였던 박람회의 도시였으며 뢰머 광장은 그 중심 역할을 했다.
뢰머 광장에서 마인강변을 잇는 일대는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뛰어놀고 산책을 즐겼던 곳이다. 프랑크푸르트 시장의 외손자였던 괴테는 “시청 앞 광장인 뢰머베르크는 이 도시에서 가장 유쾌한 산책 장소다. 나는 시청 안에 있는 돔 모양의 넓고 낮은 방에서 숨바꼭질을 무척이나 즐겼다”고 그의 자서전에서 회고하고 있다.

불후의 명작이 태동한
괴테하우스

괴테는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나 20여 년 머물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파우스트’ 등 불후의 명작을 써내려갔다. 그의 생가는 괴테하우스라는 이름으로 복원돼 대문호의 삶을 고스란히 추억하고 있다. 중세로 향하는 프랑크푸르트 여행은 18세기 건축양식을 고루 갖춘 괴테의 집을 거니는 것만으로 넉넉히 차오른다. 1층은 바로크 양식이고 낡은 피아노가 있는 2층은 로코코풍이며 괴테가 태어난 3층은 루이 16세풍이다. 괴테대학, 괴테광장으로 명명된 공간 외에도 차일 거리 끝 성카타리넨 교회는 괴테가 세례를 받은 곳으로 괴테의 흔적은 도심 곳곳에 남아 있다.
프랑크푸르트는 도시의 건축미 또한 도드라진다. 붉은색 고딕 탑의 성 바르톨로메우스 대성당은 9세기에 처음 지어졌지만 로마네스크, 바로크 양식이 혼재돼 있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하우프트반호프는 19세기말 프로이센이 한창 번성하던 시기의 힘 있는 조각들로 장식돼 있다. 라이프치히역에 이어 독일에서 두 번째 규모인 하우프트반호프는 건축학도들이 일부러 방문하는 곳이기도 하다.
 괴테의 생가, ‘괴테하우스’

괴테하우스 내부 전경

도시의 건축, 예술 담아낸 마인강

구도심 옆의 마인강은 도시의 건축과 예술을 담아내며 유유히 흐른다. 대성당 아래 쉬른 미술관은 2차 대전 이후 폐허가 됐던 프랑크푸르트의 과거를 복합 예술 공간으로 되살린 곳으로 젊은 건축가들의 열정이 담겨 있다. ‘건축이란 보는 게 아니라 체험하는 것’이라는 슬로건을 갖춘 아방가르트풍의 건축박물관이나 렘브란트와 보티첼리의 작품을 소장한 슈테델 미술관 역시 마인강변의 주요 볼거리다.
프랑크푸르트의 상설박람회장 앞에는 보로프스키의 작품 ‘망치질하는 남자’가 종일 분주하게 망치질을 하고 있다. 르네상스풍의 오페라하우스는 2차 대전 때 소실됐지만 시민의 뜻을 담아 70여 년 만에 원형대로 복원됐다.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도열한 마인강변 남쪽 길목은 매주 토요일이면 벼룩시장이 들어서며 해질 무렵이면 주민들이 아펠바인(사과와인)을 즐긴다. 세계적인 박람회가 연중 열리는 거대 도시는 예술과 과학의 흔적과 함께 애틋한 정서 역시 놓치지 않고 있다.
프랑크푸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