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속 과학읽기

과학의 양성평등 스며든
‘로망의 땅’

쿠바 아바나

쿠바는 오랜 몽상을 현실로 뒤바꾸는 로망의 땅이다.
수도 아바나의 도심에는 룸바 선율이 흐르고, 추억의 올드카가 오가며, 스페인풍 골목이 이어진다.
여성 과학자들이 큰 사회적 편견 없이 활동하는 곳이 중미의 섬나라 쿠바다.
쿠바

쿠바 이주 뒤, 전화 개발한 메우치

쿠바는 여성 과학자의 수가 전체 과학자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쿠바 혁명 이후 직종의 양성평등을 위해 국가차원에서 심혈을 기울인 결과다. 과학자뿐 아니라 의사, 법조인 등 전문 직종에서 여성의 비중이 높다. 아바나 등 대도시에서 이런 현상은 두드러진다. 그렇다고 특별한 전문 직종의 임금이 크게 우대받는 것은 아니다. 과학자, 의사, 예술가, 일반 사무직, 노동자의 수입은 별 차이가 없다. 오히려 개방 이후 외국인을 상대하는 관광업에 종사하는 아바나 사람들의 수입이 괜찮은 편이다. 먹거리 자급에 노력해온 쿠바는 생명공학 기술이 뛰어나며, 인구는 중남미의 2%에 머물지만 과학자 수는 약 10%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로망의 땅 ‘아바나’의 길거리 연주자들

수도 아바나는 전화기를 발명한 안토니오 메우치의 흔적이 담긴 곳이기도 하다. 이탈리아 태생의 엔지니어 메우치는 1800년대 중반 쿠바 아바나로 이주한 뒤 전기와 금속판의 떨림을 이용해 전화의 단초가 된 초기 모델을 개발했다. 이후 미국에서 ‘텔레트로포노(Teletrofono)’라는 이름으로 시연을 선보이기도 했다. 발 빠른 특허출원으로 전화기의 발명자가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로 알려져 있지만, 2002년 전화의 최초 발명자는 안토니오 메우치로 최종 정정됐다.

스페인풍 골목이 이어지는 구도심

쿠바의 수도 아바나는 다채로운 역사와 문화가 녹아든 도시다. 투박한 돌길에는 온기가 느껴지고, 햇살은 선명하고, 배회하는 이방인들의 피부 색깔은 다양하다. 구도심 문화지구인 아바나 비에하의 대성당 광장에 서면 혁명이 숨 쉬던 공간은 개방과 낭만의 호흡으로 덧씌워진다.
고풍스런 스페인풍 건물의 대성당

대성당의 고풍스런 스페인풍 건물은 하늘을 아우르며 높게 솟아 있다. 비대칭의 대성당과 광장은 아바나의 랜드 마크다. 바로크 스타일의 대성당은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칭송받는 곳이다. 광장에서는 알록달록한 치마에 꽃과 터번으로 치장한 여인들과 여행자들이 빠르게 뒤섞인다.
대성당 광장에서 남쪽으로 접어들면 오비스뽀 거리다. 거리에는 음식점과 바가 즐비하다. 쇠고기, 피망, 양파를 넣고 끓인 고기스튜 ‘로빠 비에하’, 옥수수 가루를 쪄낸 ‘따말’ 등 쿠바의 전통음식을 맛볼 수 있다. 오비스뽀 거리의 카페에서는 밤낮으로 룸바 등 라이브 음악이 흘러나온다.
오비스뽀 거리의 음식점

오비스뽀 거리 카페의 연주자들

올드카와 럼, 그리고 체 게바라

오비스뽀 거리 끝자락의 아르마스 광장은 아바나에서 가장 오래된 광장이다. 16세기부터 도시의 중심부 역할을 했으며 18세기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광장 주변으로는 작은 신전과 박물관이 옹기종기 들어선 아담한 모양새다. 광장에서는 중고책 시장이 들어서 도시의 온기를 더한다. 책 표지의 주요 모델은 대부분 쿠바 혁명의 상징인 체 게바라다.
광장 남쪽으로는 한때 해적선을 감시하는 역할을 했던 산 프란시스꼬 교회, 쿠바의 술인 럼을 만날 수 있는 럼 박물관이 모습을 드러낸다. 럼 박물관에서는 사탕수수 채취에서 증류에 이르는 과정을 엿볼 수 있으며 시음용 럼도 한 잔 마실 수 있다. 럼은 민트, 탄산수를 첨가한 모히또나 콜라와 레몬을 넣은 쿠바 리브레가 대표적이다.
아바나의 구도심을 이국적으로 채색하는 것은 올드카들이다. 박물관에서나 볼 듯한, 50년대를 풍미했던 미국산 차들은 버젓이 거리를 누비고 다닌다. 크라이슬러, 포드 등 요즘 미국에서도 보기 드문 차들이다. 미군정 시절, 아바나는 미국 부호들의 휴양지였고 그들이 남긴 유흥의 흔적은 수십 년 세월을 지나 고스란히 남아 있다.
벽화로 남겨진 체 게바라

헤밍웨이의 작품이 녹아든 공간들

헤밍웨이를 기억하는 공간

헤밍웨이는 쿠바와 쿠바의 럼 칵테일을 누구보다 사랑했던 소설가다. 헤밍웨이는 오비스뽀 거리의 암보스 문도스 호텔에 머물며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를 집필했다. 해가 저물면 대성당 옆 ‘라 보데기따’에 들러 모히또를 마셨다.
아바나 동쪽, 한적한 포구마을인 꼬히마르는 헤밍웨이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줬던 소설 ‘노인과 바다’의 배경이 된 장소다. ‘노인과 바다’의 다른 한 공간이었던 마리나 헤밍웨이는 요트가 즐비한 관광지가 됐고, 그가 실제로 거주했던 아바나 남쪽의 저택은 헤밍웨이 박물관으로 변했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애장품인 낚싯배가 함께 전시돼 있어 여운을 더한다.
미국 국회의사당을 닮은 까삐똘리오와 혁명박물관은 센뜨로 아바나 지역의 주요 볼거리다. 혁명광장 인근, 내무성 건물의 한 벽면을 체 게바라의 얼굴이 채우고 그의 대표 어록이 함께 새겨져 있다. 쿠바 혁명의 상징인 체 게바라는 최근에는 티셔츠의 디자인으로, 그래피티 벽화 속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구시가와 도심은 방파제 옆 도로인 말레꼰과 나란히 이어진다. 말레꼰에서 카리브해의 바람을 맞으며 청춘들은 럼을 마시고 데이트를 즐긴다. 해풍 속에 럼 한잔 걸치며 시가 한 개비 피우는 것은 쿠바 여행자들의 오랜 로망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