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발견

생각만으로
스마트폰 문자 보내고

녹조류로 시력 회복하고

2010년 개봉한 SF영화 ‘아바타’에는 부상으로 다리를 움직일 수 없는 군인이 가상현실(VR)과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기술을 이용해 자신의 뇌와 연결된 또 다른 자아를 움직이는 모습이 나온다.
1987년부터 1994년까지 7부작으로 방영한 미드 ‘스타트렉 : 더 넥스트 제너레이션’ 등장인물 중에는 엔터프라이즈호 기관장 조르디 라포지 소령이 있다. 라포지 소령은 앞을 보지 못하지만 뇌 시각중추와 연결된 길고 둥근 특수 안경인 ‘바이저(Visor)’로 가시광선 이외 파장의 빛과 열까지 감지할 수 있다. SF에서는 우리 인체의 장애나 한계를 뛰어넘게 도와주는 기술들이 등장한다.
SF영화 ‘아바타’에는 부상으로 다리를 움직일 수 없는 군인이 가상현실(VR)과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기술로 또 다른 자아인 ‘아바타’를 움직이는 장면이 나온다.(IMdB 제공)

사지마비 환자가 생각으로 휴대폰 문자를

지난 5월 13일자 과학저널 ‘네이처’에는 미국 스탠포드 하워드 휴즈 의학연구소, 스탠포드대 전기공학과, 신경생물학과, 스탠포드 의대 신경과학연구소, 바이오-X 연구소, 프로비던스 보훈병원 신경재활·신경공학 R&D센터, 브라운대 뇌과학연구소, 하버드대 의대 공동연구팀이 사지마비 환자가 생각만으로 글씨를 쓸 수 있게 하는 데 성공했다는 내용의 연구결과가 실렸다.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기술을 다시 한 번 도약하게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 이번 연구결과는 과학저널 ‘네이처’ 5월 13일자에 실렸다.
SF에서나 볼 수 있었던 것처럼 생각만으로 의사소통을 하고 사물을 움직이는 BCI 기술은 1970년대 초 처음 등장했다. 가시적 성과를 내놓은 때는 뇌과학, 전자공학, 인공지능(AI)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기 시작한 2000년 들어서이다. 최근에는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와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 등도 BCI 연구에 뛰어들면서 실험실 수준이 아닌 상용화가 눈앞으로 다가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마인드 라이팅’의 작동 원리. 전자칩이 이식된 사지마비 환자가 머릿속으로 글씨 쓰는 상상을 하면 컴퓨터 화면에 글자들이 즉시 표시된다. 기존의 생각으로 글쓰기 기술보다 타이핑 속도나 정확도가 2배 이상 향상됐다.(네이처 제공)

연구팀은 2007년 척추손상을 당해 목 아래로는 몸을 움직일 수 없는 65세의 남성 환자 ‘T5’를 대상으로 새로운 BCI 기술을 실험했다. 연구팀은 환자 ‘T5’의 좌뇌 운동피질에 마이크로 탐침 100개가 박혀 있는 전자칩 2개를 이식했다. 아스피린 크기의 전자칩 2개는 환자가 손과 손가락을 움직이려는 생각을 전기신호로 전환해 컴퓨터로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컴퓨터로 전달된 전기신호는 신경망 인공지능을 거쳐 화면에 글자로 표시된다.
기존에도 생각만으로 글씨를 쓸 수 있도록 하는 BCI 기술이 개발된 적이 있다. ‘포인트 앤 클릭 타이핑’으로 불린 기존 기술은 사지마비 환자가 생각이나 눈동자의 움직임으로 컴퓨터 화면에 표시된 가상 키보드나 마우스를 원하는 글자로 이동시켜 타이핑 하는 방식이었다. 이 방식으로는 분당 최대 40자 정도밖에 쓸 수 없고 타이핑 정확도도 50% 이하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지마비 환자의 좌뇌 운동피질에 이식된 전자칩. 소아용 아스피린 크기의 전자칩은 환자의 생각을 글자로 표시할 수 있게 돕는다.(브레인게이트 제공)

사지마비 환자가 생각으로 쓴 알파벳 글자들. 환자의 뇌에 이식된 전자칩은 환자가 글씨를 쓴다는 생각을 떠올리면 이를 전기신호로 전환해 컴퓨터로 보내고 인공지능이 글자를 정확하게 인식해 화면에 띄운다.(브레인게이트 제공)

‘마인드 라이팅’, ‘브레인 투 텍스트’로 이름 붙여진 이번 BCI 기술은 환자 T5가 손발이 마비되기 전처럼 펜을 들고 종이에 글자를 쓰는 상상을 하면 필기체 형태의 글자가 화면에 표시되고 신경망 인공지능은 이 필기체 글자를 빠르게 단어와 문장으로 변환시켜준다. 기존처럼 원하는 글자를 가상 키보드를 찾아서 클릭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글자를 상상만 하면 인공지능이 즉시 변환시켜주기 때문에 글자를 쓰는 속도는 물론 타이핑 정확도도 2배 이상 향상됐다. 연구팀에 따르면 이번 기술을 이용하면 분당 평균 90자, 18개 단어를 타이핑할 수 있게 됐고 정확도는 94.1%까지 높아졌다. 이는 T5와 비슷한 연령대의 일반적인 스마트폰 타이핑 속도인 분당 115자와 비슷하다.

광유전학 기술로 앞 못 보던 이가 광명을

‘몸이 천 냥이면 눈은 구백 냥’이라는 말이 있다. 녹내장이나 망막색소변성증 등으로 인해 시력을 잃으면 다시 회복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과학자들이 광유전학 기술로 시력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픽사베이 제공)

과학기술은 40년 이상 앞을 보지 못하던 사람에게 광유전학 기술을 적용해 다시 눈을 뜨게도 해줬다. 프랑스 소르본대 국립보건의학연구소, 국립안과병원 의학연구·임상조사센터, 로스차일드 안과재단, 시각연구소, 미국 피츠버그대 의대 안과학교, 영국 런던대(UCL) 안과연구소, 무어필드 안과병원 의과학연구센터, 스위스 바젤 분자·임상 안과학연구소, 바젤대 의대 안과학교실 공동연구팀은 광유전학(Optogenetics) 기술로 해조류의 유전자를 이식해 시각장애인의 시력을 부분적으로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동물실험에서나 쓰이는 광유전학 기술을 사람에게 적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같은 연구결과는 의학분야 국제학술지 ‘네이처 메디슨’ 5월 25일자에 실렸다.
광유전학은 유전공학기술과 빛을 이용해 특정 세포를 조절하는 기술이다. 광유전학 기술을 이용해 생쥐에게 기억을 이식하거나 지우는 실험이 성공하기도 했다.
연구팀은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력을 잃어 40년 동안 앞을 보지 못하던 58세의 프랑스 남성에게 광유전학 기술을 적용했다. 망막색소변성증의 원인은 명확치 않지만 유전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광수용체 기능에 문제가 생겨 나타나는 질병으로 녹내장, 당뇨망막병증과 함께 실명의 3대 원인으로 꼽히며 세계적으로 4000명 중 1명꼴로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팀은 해조류의 옵신 유전자를 추출해 인체에 무해한 아데노 관련 바이러스에 실어 환자의 망막에 이식했다. 이식 4주 뒤부터 눈에서 옵신 단백질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환자는 특수 고글을 쓰고 외출하면 횡단보도의 흰 줄을 감지할 수 있었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특수 고은 사물에서 반사된 빛을 증폭시켜 남성의 망막에 황색 파장의 빛을 보내도록 했다.
이후 옵신 단백질은 점점 증가해 25주가 지난 뒤부터는 일상에서도 고글을 쓰고 물건의 위치를 인식하고 물건을 찾을 수 있게 됐다. 연구팀은 환자의 뇌파를 측정한 결과 시각중추 활동도 활발해지면서 실제로 시력도 회복됐음을 확인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오랫동안 인간의 활동과 외부세계의 인식을 차단해왔던 장애들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SF 소설가 김초엽과 김원영 변호사가 함께 쓴 ‘사이보그가 되다’에서는 과학기술의 발달이 장애를 끝낼 수 없으며 오히려 장애가 없는 상태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를 표시했다. 장애의 극복은 단순히 과학기술만이 아니라 인식이 바뀔 때 도래할 것이다.
14년 전 척추손상으로 사지가 마비된 60대 남성 환자가 ‘마인드 라이팅’ 기술을 이용해 글을 쓰는 실험을 하고 있는 모습. 이 기술은 분당 평균 90자의 글자를 쓸 수 있게 해주는데, 이는 환자와 비슷한 연령대인 일반인의 스마트폰 문자 타이핑 속도와 거의 일치한다.(브레인게이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