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나눔

세상에

늦은 시기는 없다

요즘 글 쓰는 재미가 쏠쏠하다. 5년 전부터 법률신문에 ‘변호사법 해설’을 연재 중이고, 로톡뉴스에 인생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를, 한국일보에 ‘정형근의 어떤 판결’이라는 칼럼을 쓴다. 그리고 대한변협신문 ‘변호사법 판례평석’에 판결에 관한 글을 보낸다. 어느 원고든 마감 날보다 일찍 보낸다. 몇 달 전부터 미리 글을 써놓기에 항상 여유롭다. 잠자리에 들었다가 떠오르는 생각이 있으면, 곧바로 일어나 컴퓨터를 켠다. 내년 8월 퇴직을 앞둔 시점에 내 생각과 지식을 나눌 수 있게 되어 감사한 마음이다. 내 글의 주제는 늘 인권보장과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한 제도의 개선이다. 공적 인물을 비판하는 것은 쉽지만, 생존해 있는 사람에 대한 비판은 가능한 피하고 있다.
지난 2007년 가을 경희대 법대 교수가 되었다. 그때 50세였다. 한국에 로스쿨이 생기는데 변호사 출신 교수를 채용한다면서 오라고 했다. 이력서 한 장을 학교로 보냈더니 교수 임용통지가 왔다. 그래서 변호사 휴업을 하고 대학 교원이 되었다. 날마다 소풍 가는 설레는 마음으로 연구실로 출근했다. 퇴근 후에도 내일 출근하여 공부할 생각에 어서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그간 펴낸 책이 10권이 넘는다. 연구논문도 적잖게 냈다.
어느 한 해에는 9편의 연구논문을 썼다. 8편까지 별 어려움 없이 학술지에 게재되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논문을 쓰면 기본적으로 ‘수정 후 게재’ 심사 결과를 받는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9번째 논문이 두 번이나 ‘게재 불가’ 판정을 받았다. 한해를 마감하는 12월에 연속적으로 안 좋은 통보를 받게 되었다. 보다 세심하게 연구하여 기고한 결과, 12월 31일자로 게재되어 세상에 나왔다. 그런데 그다음 해에 법무부에 있는 검사가 전화를 하여 학교로 찾아오겠다고 했다. 그 검사는 연구실을 방문하여 앞으로 법무부에서 ‘변호사제도 개선위원회’를 발족하는데 거기에 참여해 달라고 했다. 검사는 내가 쓴 논문을 보았는데, 변호사법 분야에 연구가 깊은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두 번이나 게재 불가 심사를 받아 겨우 게재된 내 논문을 보여 주었다. 아마 논문 심사에서 탈락되지 않고 곧바로 게재되었다면, 완성도가 낮았을 것이고 좋은 평가도 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 논문 덕분에 법무부의 변호사법 개정작업에 참여했다. 그때까지 법의 해석 수준에 머물렀었는데, 법조문을 만드는 작업을 하다 보니 안목이 깊어지고 넓어졌다. 법조문 한 문장에 어떤 단어와 내용을 담아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몇 년 동안 위원회에 결석도 하지 않고 열심히 참석했다. 어느 날 검사가 전화를 하여 법무부장관상 표창을 상신하겠다고 했다. 초등학교 때도 받지 못한 상을 받아보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내가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원장으로 있을 때 예전에 연구실을 찾아온 검사를 만났다. 그분은 서울중앙지검에서 세상을 뒤흔든 사건 수사를 하는 역량을 발휘하고 있었다. “검사님이 내가 두 번이나 탈락된 논문을 들고 나를 찾아온 바람에 내가 법에 관한 시야가 넓어졌다”고 감사함을 표했다. 좋지 않은 일을 통해서 찾아온 행운에 대하여 대화를 나눴다.
공부
내 삶을 전환시킨 큰 사건은 25세 때 찾아왔다. 서울지방검찰청에서 퇴근할 무렵 우연히 석간신문을 보게 되었다. 신문 첫 면에 ‘사법시험 응시자격, 법대 졸업자로!’라는 기사가 나와 있었다. 그때 나는 중학교 졸업 후 고교 진학을 못하고, 검찰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검찰청에 근무 중이었다. 그러면서도 독학으로 사시에 도전하고자 했다. 중졸 자격으로 사법고시에 합격하려는데, 법대 졸업자로 학력제한을 한다면 응시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충격적인 기사를 급히 읽어보았다. 사법시험 제도개선 공청회를 했는데, 학력제한을 하자는 의견이 많았다고 했다. 나는 공청회가 뭔지 몰랐고, 신문에 났으면 그대로 되는 줄 알았다. 법대 나오지 못했다고 사법시험에 응시하지 못하면 안 될 일이었다. 그래서 대학을 가기로 했다. 우선 고교 졸업자격을 취득해야 했다. 덕수궁 곁에 있던 서울지검에서 급히 나와 시청역에서 전철로 종각역으로 가서 대입 검정고시 학원에 등록을 했다. 퇴근 후에는 밤늦게까지 하는 야간반 수업을 들었다.
그해 여름 26세에 검정고시에 합격하여 고등학교 졸업 자격을 얻었다. 고졸자가 되었다는 기적 같은 사실에 기뻐했다. 본격적인 대입준비를 위해서 합격증 받은 다음 날 검찰청을 사직했다. 그리고 28세에 법대에 진학했다. 수차례 낙방 끝에 36세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그렇지만 사법시험이 폐지될 때까지 학력제한은 없었다. 변호사 개업 후 생활의 안정이 되었음에도 장래를 향하여 대학원에 진학하였고, 44세 무렵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40이 넘어 받은 박사를 어디다 써먹나 싶었는데, 교수가 되는 계기가 되었다. 초등학교도 9세에 들어가고, 중학교는 19세 졸업한 지각인생이지만, 할 건 다하고 지내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