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과학읽기

메타버스 시대 앞당긴
‘레디 플레이어 원’

원자력 연구활동도
메타버스 적용될까?

영화 블랙팬서

나비가 된 꿈이라는 뜻의 호접지몽(胡蝶之夢). 장자(莊子)가 꿈에 나비가 되어 하늘을 날아다니는 꿈을 꾸는데, 꿈이 너무 생생한 나머지 자신이 나비인지 장자인지 분간하지 못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현실이 꿈인지 꿈이 현실인지, 어떤 것이 진짜인지 모르는 상황이라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나 인생의 무상함을 비유한 말이다.
현실세계에서 물아일체의 경지는 가상현실 세계에서 맛볼 수 있다. ‘UN미래보고서 2040’에 따르면 2039년 완벽한 가상현실 기술이 인류의 삶에 보편화된다. 이른바 ‘메타버스(Metaverse)’ 시대다. 메타버스는 메타(Meta, 초월)와 유니버스(Universe, 우주·세계)의 합성어다. 현실과 비현실 모두 공존할 수 있는 가상 세계를 의미한다. 참고로 메타버스라는 표현은 미국의 SF소설가 닐 스티븐슨의 ‘스노크래시(1992년 )’라는 소설 속 가상세계의 이름으로 처음 등장했다.
메타버스는 ▲의사소통 방식의 변화 ▲제조업의 가상 공장화 ▲도심 인구 집중 둔화 ▲물리적 설비 투자 장벽의 완화 등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출현과 비견할 만큼 인류에 몰고 올 파장이 크다.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는 최근 발표한 코로나 이후 글로벌 트렌드 보고서에서 완전한 디지털 사회 전환을 위한 7대 기술 중 하나로 메타버스를 꼽았다.
2018년 개봉한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Ready Player One)’은 메타버스 세상을 이미 가시화시켰다. 2045년이 배경이다. 슬럼가에 거주하는 주인공은 특수 기계를 사용하면서 가상현실 오아시스(OASIS)에 접속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암울한 현실과 달리 오아시스에서는 원하는 캐릭터로 어디든 갈 수 있고, 뭐든지 할 수 있다. 상상하는 모든 게 이루어지는 곳이다.

Reality is Real 오아시스, 2040년 현실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 등장하는 오아시스는 실제로 구현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오아시스에서는 개인전용 아바타를 만들 수 있다. HMD(Head Mounted Display)를 통해 1인칭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동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접속하는 가상현실 세계다. 1인칭 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MMORPG : Massively Multiplayer Online Role-Playing Game)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세계(World), 즉 MMORPW라고 볼 수 있다.
메타버스 실현
메타버스 실현

가상세계를 구현하기 위해선 HMD를 통한 시각화뿐만 아니라 청각, 후각, 촉각, 미각 등 오감(五感)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기술개발 측면에서 볼 때 시각은 HMD, 청각은 입체음향 이어폰과 VR 모션 플랫폼, 촉각은 몸에 착용하는 VR 슈트와 장갑이 있다. 후각은 4DX 영화관처럼 향기를 뿌려주는 방식 외에도 마스크 형태로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현재 가상현실 기술은 시각과 후각에 집중돼 있다. 시각은 HMD 기기를 통해 이미 높은 수준으로 구현이 가능하고, 후각 역시 실제 향기 살포제를 이용해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 4DX 영화관에 가면 체험할 수 있다. 영화도중 향기도 흐른다.
청각의 단순 음향은 ‘3D 입체음향기술’로 구현이 가능하다. 하지만 청각의 범주엔 운동감각과 평행감각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현재 기술 수준으론 구현이 어렵다. 촉각 역시 부분적으로 가능하다. 장비를 착용하는 특정부분에 한정되고, 이 또한 진동을 주는 정도로 구현되었기 때문에 앞으로 개발이 더 필요하다.
미각은 실제로 음식을 섭취할 경우 과정이 복잡해지고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여러 방안 중 하나로 전기 자극을 통해 맛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방식이 검토되고 있다. 메타버스의 실현은 현재의 기술발전 속도로 봤을 때 기존 예상보다 훨씬 빨라질 수 있다.
사이버 멀미의 요인들(두 눈의 시차 / 낮은 해상도)
사이버 멀미의 요인들(두 눈의 시차 / 낮은 해상도)

메타버스 세계, 필수 도구?

메타버스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도구는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가상현실 세계를 보여줄 HMD, 신체의 감각을 전해주는 슈트 또는 장갑과 신발, 우리가 걷거나 달리거나 또는 눕거나 점프를 뛰는 등 신체의 운동감각을 느끼게 해주는 모션 시뮬레이터, 그리고 자신의 아바타를 구현하기 위한 3D 스캐너가 필요하다.
HMD는 현재 많은 제품들이 출시되고 있지만, 아직 여러모로 불편한 요소가 많다. 주로 밴드로 고정시키는 경우가 많아 머리가 헝클어지거나, 얼굴에 밀착돼 땀이 흘러 화장이 번질 수 있다. 또한 무겁기 때문에 동작이 편하지도 않다. 때문에 HMD는 좀 더 가볍게, 착용이 편안한 안경이나 고글 같은 형태로 진화 중이다. 동시에 해상도는 점차 높아지고 있다.
슈트는 현재 특정 부위만 착용할 수 있고 두껍다. 일부분만 감각이 느껴지며 움직이기도 불편하다. 슈트 역시 더 가볍고 부드러운 소재를 사용해 착용감을 높여야 한다. 동시에 센서를 촘촘하게 배치해 감각을 정밀하게 모사해야 한다.
레디 플레이어 원 영화에서 주인공이 트레일러에서 접속할 때 바닥에 레일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러닝머신과 같이 움직이는 이 장치는 주인공이 걷거나 뛰는 감각을 보조한다. 전문용어로 ‘트레드밀(Treadmill)’이라고 하는데 이같이 동작을 보조하며 운동감각을 구현해주는 장치를 모션 시뮬레이터라 한다.
아바타를 구현하는 3D 스캐너는 다수의 카메라를 이용해 넓은 공간이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다. 손으로 들고 간편하게 스캐닝하는 ‘핸드헬드(Handheld)’ 장치도 있으나, 현재는 무겁고 시간이 오래 걸리고 정밀도 역시 떨어진다. 자신의 실제 외형을 반영한 아바타를 만들 경우 정밀도와 생성 시간이 관건이다.

사이버 멀미, 왜 느끼나?

VR 환경에서 멀미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이버 멀미는 디지털 기기 화면의 빠른 움직임을 보면서 어지럼과 메스꺼움을 느끼는 증상이다. 고글형태의 기기를 착용하고 시선을 급격히 돌리면 기기의 회전 속도를 맞추지 못해 화면 지연이 생기는데, 눈의 시각 정보와 몸의 위치 정보의 차이가 누적되면서 사이버 멀미가 더 커진다.
우리 눈의 원리를 이해하면 사이버 멀미의 원인을 알 수 있다. 사람은 오른쪽 눈의 시야와 왼쪽 눈의 시야에서 각각 인식된 장면을 뇌로 보낸다. 뇌는 거리나 위치 등을 구분한 후 하나로 합성하는데, 이때 합성된 영상 정보를 실시간으로 통합해 인지하기 때문에 멀미가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HMD는 오른쪽 렌즈와 왼쪽 렌즈에서 각각 만들어진 영상을 특별한 기준 없이 하나로 합성한다. 때문에 사람마다 다른 두 눈의 시차를 비롯해 신체조건이 반영되지 않아 HMD를 통해 보이는 영상과 개인이 인식하는 영상 사이 차이가 나타나면서 멀미가 느껴지게 된다.
낮은 해상도와 프레임도 영향을 끼친다. 그래픽 기술을 통해 픽셀로 구현된 영상은 실제 눈으로 보는 환경에 비해 부자연스럽다. 특히 해상도가 낮으면 낮을수록 픽셀들이 명확하게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어지럼증이 나타난다. 때문에 인간의 눈으로 구분하는데 영향을 주지 않는 수준으로 해상도를 높이는 기술이 중요하다.
우리가 고개를 돌리면 자연스럽게 고개를 따라 시선이 이동하지만, 스마트폰으로 보는 VR이나 PC 등과 케이블로 연결된 VR은 전송속도에 의해 화면이 뒤늦게 따라온다. 현실과 VR 사이에 ‘인지부조화’가 발생하기 때문에 VR에서도 멀미를 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사이버 멀미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기반연구도 한창이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VR을 체험하면서 생기는 사이버 멀미를 뇌파를 이용해 정량적으로 측정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의 핵심은 눈으로 가상현실을 체험하는 동안 뇌의 특정 영역과 특정 뇌파가 일관성 있게 변하는 것을 정량적으로 분석해 규명한 것이다. 뇌파 변화 과정을 실시간으로 관찰해 앞으로 VR콘텐츠 제작 기준에 사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은 현 인류에게 메타버스 시대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모두 상상케 하면서 새로운 미래를 대비하게 한다. 머지않아 원자력 R&D 실험환경을 메타버스 속에서 펼치는 시대를 사색해 보면서, 원자력의 새로운 미래를 설계해 보는 것도 괜찮은 일상의 연구가 될 수 있을 법하다.
사이버 멀미의 요인들(두 눈의 시차 / 낮은 해상도)

사이버 멀미의 요인들(낮은 프레임 / 인지부조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