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속 과학읽기

‘둥근 지구’ 증명한
탐험가의 도시

스페인 세비야

안달루시아 지방의 대표도시 세비야(Seville)는 스페인의 향취가 한결 강렬하다.
대항해시대 때 세상을 호령했던 도시는 부와 황금을 자양분 삼아 문화 예술을 꽃피웠다.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에 이어, 항해가 마젤란은 세비야에서 세계 일주를 시작했으며
‘지구는 둥글다’는 학설을 실제로 증명했다.
스위스 베른

마젤란 세계일주의 출발점, 황금의 탑

세비야 과달끼비르 강변에 있는 황금의 탑

세비야 과달끼비르 강변에는 ‘황금의 탑’이 우뚝 솟아 있다. 정12각형의 탑은 13세기 초 무어인이 건립할 당시 황금색 타일로 덮여 있어 이름 붙여졌다. 탑은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200여 년간 대항해시기를 주도했던 세비야의 ‘황금시대’를 지켜본 공간이기도 하다. 선박을 검문하는 기능을 하던 황금의 탑 아래로는 금과 은, 향료를 실은 수많은 교역선들이 오갔다. 마젤란이 세계 일주에 나설 때 출발점이 된 곳도 황금의 탑이다.
‘지구는 둥글다’는 이론은 여러 과학자들이 주창했지만 그 사실을 세계 최초로 증명해낸 주인공은 포르투갈인 마젤란이다. 아프리카, 인도 항로에 이어 서쪽항로 개척을 계획했던 마젤란은 포르투갈의 지원이 무산되자 스페인 카를 5세의 도움으로 세계 일주에 나서게 된다. 5척의 배, 265명의 선원과 함께 세비야에서 출발한 마젤란의 항해는 대서양과 신대륙을 넘어 아시아까지 이어졌다.
마젤란은 필리핀에서 목숨을 잃었지만 엘카노 선장 등 18명의 선원은 3년에 걸친 긴 항해를 마무리하고 스페인으로 귀환한다. 해양박물관으로 변모한 황금의 탑에는 마젤란 등 탐험가들의 삶과 대항해의 역사가 전시돼 있다.

모스크의 변신, 대성당과 히랄다 탑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대성당

과달끼비르 강은 무역선 대신 유람선과 카약이 떠다니는 한가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도시의 여유로움은 대성당이 들어선 구도심까지 산책하듯 이어진다. 트램이 더디게 오가는 세비야의 고풍스런 골목에는 가로수에 오렌지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4만8,000여 그루에서 수확되는 이곳 오렌지는 너무 쓰고 시어 식용으로 먹기 곤란하다. 길가에 버려져 골칫거리인 오렌지들은 최근에는 전기 생산에 활용 중이다. 과육을 발효시켜 발생한 메탄으로 발전된 ‘오렌지 에너지’는 정수장 전기 외에 생활용도로 공급될 계획이다.
오렌지 나무 주변으로는 중세향기 가득한 세비야의 유적들이 늘어서 있다. 세비야 대성당은 스페인에서는 가장 거대한 성당으로 로마의 싼 삐에뜨로 성당과 런던의 세인트폴 성당에 다음 가는 규모를 자랑한다. 모스크가 있던 자리에 세워진 성당에는 콜롬버스의 묘가 안장돼 있다.
대성당의 부속 건물인 히랄다 탑은 세비야의 상징으로 추앙받는 탑이다. 회교사원의 첨탑이었던 탑은 16세기 기독교인들에 의해 풍향계가 있는 종루가 더해졌다. 히랄다 탑 내부는 왕이 말을 타고 오를 수 있도록 계단 대신 경사 길로 돼 있다. 대성당 건너편에는 왕의 궁전, 대사의 방 등을 간직한 옛 이슬람 성채 알까사르가 자리해있다.

투우와 플라멩코 펼쳐지는 광장

플라멩코를 추는 사람들

낭만과 정열의 도시 세비야는 느긋하게 즐겨야 제격이다. 플라멩코와 투우는 세비야가 원류다. 세비야는 오페라 ‘카르멘’과 ‘세비야의 이발사’의 주 무대이기도 하다. 스페인 국민음식인 하몽과 초콜릿을 듬뿍 얹은 츄러스도 이곳에서 맛봐야 풍미를 더한다.
세비야 대학 건너편에는 캠퍼스를 바라보며 츄러스에 오전 커피를 즐길 카페들이 도열해 있다. ‘알폰소 13세’ 호텔은 20세기 유럽에서 가장 호화로웠던 호텔로 세비야 대학 옆에 자리했다. 귀족의 저택같은 호텔은 왕의 이름을 따서 지었으며 예전에는 왕의 초대를 받은 대통령과 왕족들만 묵을 수 있었다. 호텔은 건물 전체가 안달루시아 전통 건축양식이다.
과달끼비르 강변의 ‘플라사 데 또로스’ 투우장은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투우장이다. 봄, 가을 시즌에 투우가 열리며 경기가 없을 때는 투우장 내에 들어선 박물관을 개방한다. 투우사의 의복, 옛 투우장 모습 등이 전시돼 있으며 줄을 서야 입장할 정도로 인기 높다.
연중 플라멩코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곳은 스페인 광장이다. 마리아 루이사 공원 옆에 자리한 스페인광장은 건축가 아니발 곤살레스의 작품으로 세비야의 건축물 중에서도 도드라진다. 탑과 다리가 어우러진 반원형의 공간 사이, 스페인 각 도시의 역사를 타일로 묘사한 공간은 예술미가 뛰어나다. 마차와 나룻배가 오가는 광장 한편에서는 플라멩코 무희의 춤사위가 펼쳐진다. 세비야 스페인광장은 배우 김태희가 모 CF에서 플라멩코를 춘 곳이기도 하다.

최대 목조건축 ‘메트로폴 파라솔’

세계에서 가장 큰 목조건축물인 메트로폴 파라솔

세비야의 골목산책은 산타크루스 지구가 흥미롭다. 옛 유대인 거주지였던 산타크루스 거리는 미로처럼 좁은 길에 예쁜 가옥과 정원이 담겨 있다. 17세기 귀족들이 살았던 골목은 최근에는 부띠끄숍과 여행자들의 숙소가 들어선 공간으로 변모했다. 세비야 현지인들의 삶은 과달끼비르 강 이사벨여왕 다리 건너 뜨리아나 지구에서 엿볼 수 있다.
도심에서의 휴식은 새 랜드마크인 메트로폴 파라솔이 그로데스크한 분위기를 더한다. 높이 150m로 세계에서 가장 큰 목조건축물인 메트로폴 파라솔은 독일 건축가 위르겐 메이어에 의해 건립됐으며 ‘세비야의 버섯’이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건축물 계단은 책을 읽거나 작품 속에서 휴식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늘 분주하다.
미식의 고장 세비야는 여느 레스토랑에 들어서도 하몽 덩어리가 와인과 함께 주방에 매달려 있다. 샹그리아 술에 곁들여지는 스페인 전통음식인 타파스 한 조각도 왠지 세비야에서만큼은 달달하다.
안달루시아 지방의 ‘낭만, 햇살, 정열’은 세비야 남서부의 항구 카디스(Cadiz)에서 더욱 눈부시다. 해상무역과 돈, 예쁜 여인들로 명성 높은 카디스는 카니발의 도시다. 봄에 개최되는 카디스 카니발은 연회자들이 분장을 한 채 트렉터를 무대삼아 공연을 펼친다. 한 편의 뮤지컬을 보듯 실력이 수준급이며, 베네치아 가면카니발과 쌍벽을 이루는 유럽의 축제로 사랑받고 있다.
공연하고 있는 카디스 카니발 연회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