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발견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이유

가정의 달을 맞아 보는
양육의 과학

“어린이의 생활을 항상 즐겁게 해주십시오. 어린이는 항상 칭찬해가며 기르십시오.
어린이의 몸을 자주 주의해 살펴 주십시오. 어린이에게 책을 늘 읽히십시오.
희망을 위하여, 내일을 위하여 다 같이 어린이를 키웁시다.”

- 소파 방정환(1899~1931) 선생이 1923년 5월 1일 어린이의 날을 맞아 배포한
‘어린이날의 약속’이라는 전단 내용 중 일부이다.
어른들의 기준이 아닌 아이들의 눈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며 믿어준다면 행복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픽사베이 제공)

가정의 달 5월, 양육에 대하여

지구 온난화 탓에 여름의 초입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여전히 ‘계절의 여왕’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5월이다. 노동절로 시작하는 5월은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부부의 날이 있는 ‘가정의 달’이기도 하다. 1년 중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자 만물이 생동하는 5월을 가정의 달로 정한 것은 가장 가까이 있고 늘 곁에 있기에 소중함을 잊기 쉬운 가족을 다시 한 번 생각하고 감사한 마음을 나누자는 의미다.
가장 가까운 사람과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들에게 더 잘해야 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가깝다는 것’, ‘서로에게 솔직하다는 것’을 자기 마음대로 막 대해도 된다는 것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어린이날(제98회)은 코로나19 상황이라는 전무후무한 상황에 맞았다. 어린이날을 즐기기 위해 서울 광진구 능동 어린이대공원을 찾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는 모습(연합뉴스 제공)

1962년 국민회당(국회의사당)에서 어린이날 기념식과 기념예술제가 열린 모습(국가기록원 제공)

요즘 뉴스들을 보면 상대방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지 않아 발생하는 문제들이 자주 등장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특히 아이들을 상대로 한 사건사고는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분노가 치밀어 오르게 만드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방정환 선생이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어린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어린 아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도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해줘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아직 모든 것에 미숙한 아이들의 행동을 어른들의 입장에서 보면 마뜩찮은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닐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어른 자신도 한 때는 어린아이였다는 사실을 생각해봐야 한다. 또 아이들은 어른보다 작고 힘이 없기 때문에 보호해줘야 한다는 당위론을 떠나 과학은 아이들을 왜 소중히 여기고 보호해야 하는지 다양한 측면에서 증명해보이고 있다.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양육과 관련한 다양한 과학적 연구결과들을 살펴보자.
소파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라는 단어를 만든 것은 아이들도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해줘야 한다는 의미에서이다. 최근 아이들을 상대로 한 사건사고들은 과연 아이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고 있는가하는 것을 의심케 만든다.(픽사베이 제공)

감정적 폭력이 물리적 폭력보다 위험

레코드

2015년 캐나다 맥길대 심리학과 연구팀은 1986년부터 2012년까지 여름캠프에 참여한 5~13세의 저소득층 남녀 아동 2,292명을 상대로 가정과 사회에서 어떻게 양육되고 있는지에 대해 추적 조사했다. 이에 대한 결과는 미국의학협회에서 발행하는 ‘JAMA 정신과학’에 발표됐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협박을 당하거나 조롱, 무시, 창피를 당하는 감정적 폭력 사례가 물리적 폭력이나 방임, 방치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많은 사람들이 물리적 폭력이 감정적 폭력보다 어린이들에게 더 해로운 것으로 알고 있지만 연구팀 분석에 따르면 감정적, 언어적 폭력은 물리적 폭력과 똑같은 뇌 부위를 자극하며 뇌에 미치는 영향도 비슷하거나 오히려 물리적 폭력보다 더 심한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어려서 받은 감정적 상처는 성장하면서 다양한 트라우마로 연결되는 것이 관찰되기도 했다. 2018년에는 학대를 당한 아동들의 트라우마는 DNA에 각인돼 후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충격적인 연구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학교 의대, 미국 하버드대 공중보건대학교 공동연구팀은 학대를 당한 아이들은 DNA에 그 상처가 그대로 남아 유전될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결과를 2018년 10월 의학 분야 국제학술지 ‘중개 정신의학’에 실었다.
연구팀은 성인 남성 34명을 무작위로 뽑은 뒤 이들의 정자를 채취해 ‘DNA 메틸화’를 분석했다. DNA의 염기서열 자체는 바뀌지 않으면서 유전자의 활성정도를 변화시켜 겉으로 드러나는 성질을 바꾸는 DNA 메틸화는 후성유전학 분석에서 많이 사용된다. 분석결과 22명의 DNA가 특이하게 변형돼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이들 22명을 심층인터뷰 조사한 결과 모두 어린 시절 육체적, 정신적 학대를 받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팀은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수정과정은 엄청난 유전자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에 학대로 인한 상처가 유전되는지에 대해서는 장기적 추적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여러 후성유전학적 연구결과들을 보면 학대로 인해 특이하게 변형된 DNA는 자손들에게 전달돼 각종 정신질환을 유발시킬 가능성이 충분히 높다고 봤다.
감정적 폭력이 물리적 폭력이나 방임보다 아이들에게 더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감정적 상처는 성장하면서 다양한 트라우마로 연결될 수 있다.(픽사베이 제공)

자연 속에서 아이들과 함께 놀고 대화하는 시간 늘려야

아이들을 ‘잘’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른들은 아이들을 위한다고 하면 물질적인 것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그렇지만 과학자들은 아이들을 건강하고 훌륭한 어른으로 키우는 일은 생각만큼 어렵지는 않다고 말한다.
미국 콜로라도대학교 의대,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펜실베니아주립대학교 연구팀은 2018년 의학 분야 국제학술지 ‘국제 비만학’에 아이들과 하루 30분 이상씩만 함께 놀아주고 대화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아이들에게 자아통제력이 생겨 자기주도 학습능력이 높아지고 소아비만까지도 막을 수 있다고 밝혔다.
비슷한 차원에서 지난해 멕시코 소노라공과대학교(ITSON), 소노라대학교 심리학 및 커뮤니케이션학과 공동연구팀은 자연을 자주 접하는 아이들은 생태환경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생각을 자연스럽게 갖게 될 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한 배려와 행복감까지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를 실험심리학 분야 국제학술지 ‘최신 심리학’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멕시코 북서지방에 사는 9~12세 남녀 어린이 296명을 대상으로 평소 야외에서 노는 횟수와 노는 시간을 조사하고 자연에 대한 생각, 절제력, 이타심, 배려심, 행복감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한 달에 4번 이상, 또는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자연을 접하는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생태보호와 지속가능성에 대한 인식은 물론 이타성과 절제력, 배려심이 우수했으며 행복감은 두 배 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어른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자신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상처를 줄 때가 있다. 보호한다는 이유로 억압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렇지만 아동심리학자나 신경정신과 전문의들은 어린이는 나무와 같아서 믿어주는 만큼 큰다고 강조한다. 또 마음껏 놀아본 아이들이 창의력과 사회성도 높고 나중에 행복한 어른이 된다고 충고한다.
상처받은 아이들, 타인에게 신뢰받지 못하는 수동적인 아이들이 많은 사회의 미래는 과연 밝을 수 있을까. 건강한 사회, 밝은 사회를 기대한다면 아이들은 꽃으로도 때려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