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전통 달력은 음양력을 사용했다. 지구의 자전주기를 1일, 공전주기를 1년이라 하고, 달의 삭망주기를 음력의 한 달이라 정했다. 그러나 서양력의 한 달 주기는 천체운동의 주기와는 아무 관계가 없고 편의상 1년을 12로 불균하게 나뉘어 놨을 뿐이다. ‘역’에서의 문제는 1년, 1월, 1일의 시간 단위가 정배수로 되어 있지 않은 데 있었다. 이 때문에 여러 가지 역법이 고안되었고 개력을 거듭하여 오늘날에 이르렀다.
과거 한국과 일본은 중국에서 반포한 달력을 받아 사용하거나 중국 역법에 따른 달력을 사용하였다. 이는 시간이 곧 정치적 권위의 상징이었음을 말해준다. 중국에서 역(曆)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사용된 것은 진나라 진시황 26년(B.C 221)부터였다.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날짜의 통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중국력이 사용된 것은 삼국시대부터였다. 고구려가 당의 무인력, 백제는 송의 원가력, 신라는 당의 인덕력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통일신라 때는 당의 선명력을 도입하여 사용하였다. 선명력은 고려 충선왕대에 원의 수시력으로 바꿀 때까지 무려 500년 가까이 사용되었다.
당의 선명력은 9세기경 발해에 의해 일본에 전해졌으며 일본은 17세기 후반까지 800년간 선명력을 사용했다. 일본은 서양천문학이 반영된 시헌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시헌력 이전의 역법인 수시력을 정향력이라는 이름으로 태양력으로 바뀔 때까지 오랜 기간 사용했다. 17세기에 조선이 최신의 역법인 시헌력을 수용하기 위해 수십 년간 노력한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일본과 달리 조선이 과학적으로 앞선 시헌력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통일된 중앙집권적 왕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