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속 과학읽기

세계 금융의 중심에서
문화·과학의 센터로,

미국 뉴욕

뉴욕의 거리는 변화의 진폭이 색다르다.
메트로를 타고 다운타운을 서너 정거장만 벗어나도 새로운 문화적 물결과 맞닥뜨린다.
‘세계 금융의 중심’인 미국 뉴욕에 첨단과 과학의 바람이 불고 있다.
스위스 베른

‘실리콘앨리’의 새로운 변신

미국 서부 샌프란시스코에 실리콘밸리가 있다면 동부 뉴욕에는 ‘실리콘앨리(골목)’가 있다. 실리콘밸리가 디지털 신기술로 번성할 무렵 맨하튼 빌딩숲 골목에 기반을 둔 실리콘앨리의 벤처기업들은 인터넷 뉴미디어를 모태로 뉴욕의 신산업을 주도했다. 흥망성쇠의 과정을 거쳤던 실리콘앨리는 최근 핀테크 외에 인공지능, 로보틱스 등 첨단산업 위주로 재편 중이다. 신기술 개발자와 글로벌 벤처 자본이 결합하며 뉴욕은 세계 과학기술의 새로운 본거지로 부상하고 있다.
브루클린 일대의 옛 공장과 창고에는 초대형 혁신 클러스터들이 들어서는 중이다. 맨하튼 옆 루즈벨트 아일랜드에는 구글과 뉴욕 코넬대학의 컨소시엄으로 건립된 ‘테크 센터’가 문을 열었다. 영국의 인공지능(AI) 연구소 ‘딥마인드’는 뉴욕에 연구팀을 구성하고 페이스북의 AI 공동 창업자를 영입했다. 뉴욕은 238개 도시가 유치경쟁을 벌였던 아마존 제2 본사의 최종 후보지로 낙점되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뉴욕 퀸스에는 대형 로켓 외관의 과학홀이 들어서 있다. 과학 및 우주의 원리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과학홀은 일주일 중 특정 요일에 무료입장이 가능하도록 문턱을 낮추고 있다.

문화예술의 용광로, 맨하튼 골목

화려한 맨하튼 골목의 밤

거리에서 만나는 문화적, 예술적 풍요로움은 뉴욕의 감성을 한껏 부추긴다. 소호, 첼시 등 대표적인 골목들은 예전에는 대부분 공장지대였던 곳이다. 몇 블록에 걸쳐 늘어선 철근 건물들이 섬유 및 의류 공장이었던 소호는 옷가게, 부띠끄 숍 등이 밀집된 활기 넘치는 메인 스트리트로 사랑 받고 있다.
‘현대미술의 아지트’로 불리는 첼시에서는 문화적 리모델링이 더욱 발 빠르다. 첼시는 90년대 이후 아티스트들이 둥지를 튼 곳으로 허름한 창고형 밀집지역에 200여 개의 갤러리 빌딩이 모여 있다. 세계적인 예술가의 작품부터 젊은 작가들의 실험작까지 수천 종의 미술품을 감상할 수 있다. 첼시 인근의 웨스트 빌리지에서는 아티스트, 디자이너, 작가 등 진품 뉴요커들을 만날 수 있으며 매년 여름이면 게이 페스티벌이 열리기도 한다. 맨하튼 서쪽의 미트 패킹(Meat Packing)은 200여 개의 도축장과 푸줏간이 있던 지역에서 클럽문화의 중심으로 탈바꿈했다.
맨하튼 동쪽의 이스트 빌리지는 링컨이 흑인해방 연설을 했던 가난한 자들의 동네였지만, 최근에는 빈티지 숍과 아담한 카페들이 즐비한 거리로 변신했다.
맨하튼 골목 외부의 문화예술 작품

맨하튼 골목에 위치한 미술관 내부

아티스트의 공간, 브루클린 덤보

‘뉴요커식’ 뉴욕 여행은 복잡한 맨하튼의 중심가를 벗어난다. 이스트강 건너 브루클린은 뉴욕의 거리 문화를 고스란히 받아낸 곳이다. 맨하튼과 브루클린을 잇는 브루클린브리지는 새로운 문화의 아지트로 향하는 관문이다. 1883년 완공된 아름다운 외관의 다리는 미국의 성공시대를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브루클린브리지의 끝자락은 ‘덤보(Down under the Manhattan bridge overpass)’ 지대와 맞닿아 있다. 덤보는 예술적인 품격만 따지면 이 지역 뒷골목의 형님뻘이다. 1970년대 후반 소호에서 벗어난 예술가들이 처음 브루클린 지역에 정착한 곳이 이곳 덤보다. 뉴욕현대미술의 중심인 첼시에 상업적 갤러리들이 몰려있다면 공장을 개조한 이곳 일대는 아티스트들의 작업실 겸 삶터가 밀집돼 있다. 이방인들에게는 직접 예술가들의 주거공간을 기웃거리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팝아티스트인 앤디워홀의 맨하튼 파티가 없어진 뒤 예술가와 모델들은 이곳 덤보의 작업실에 모여 강 건너 맨하튼의 야경을 감상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이 지역은 옛 브루클린을 주 무대로 촬영한 영화 ‘Once upon a time in America’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덤보에서 이스트강 동쪽 강변을 산책한 뒤 맨하튼을 바라보며 브루클린 다리 위를 걸어 건너는 것은 뉴욕에서 손꼽히는 산책 코스다.
맨하튼과 브루클린을 잇는 브루클린브리지

그래피티로 가득 찬 윌리엄스버그 거리

이스트강변을 따라 북쪽으로 향하면 윌리엄스버그로 이어진다. 그래비티와 클럽, 빈티지 숍으로 채워진 윌리엄스버그의 공기는 좀 더 가볍고 자유롭다. 윌리엄스버그 베드포드거리의 레스토랑에서 브런치를 즐기고, 뉴요커들이 즐겨 찾는다는 베이글 스토어에서 갓 구운 빵을 산 뒤 옛 공장지대의 그래피티를 감상하며 골목을 서성거리는 게 이곳에서의 일과다. 인근 ‘포피루츠코' 공원 잔디밭에 앉아 햇살을 만끽했다면 서점과 빈티지 숍을 기웃거리며 윌리엄스버그의 그윽한 밤을 기다리면 된다.
퀸스와 맞닿은 롱아일랜드시티는 현대미술의 새 거점인 ‘P.S.1’에 주목한다. P.S.1은 뉴욕현대미술관인 ‘MoMA’가 수리 중일 때 그곳을 대신했던 아트센터로 최근에는 MoMA에 비해 더 자유롭고 실험적인 젊은 작가들의 미술 작품을 전시 중이다. 길 건너 그래피티의 총아인 ‘5 Pointz’가 재개발로 사라진 뒤로는 홀로 이 지역 예술의 자존심을 지켜내고 있다. 학교를 개조해서 만들어진 공간은 MoMA처럼 북적이지 않으면서도 개성 있는 분위기로 예술과 변화를 쫓는 청춘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
윌리엄스버그 거리의 베이글 스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