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발견

언택트 시대의
자연이 주는 즐거움,

숲과 나무의 과학

유성에서 조치원으로 가는 어느 들판에 우두커니 서 있는 한 그루 늙은 나무를 만났다.
…묵중한 그들의, 침울한 그들의, 아아 고독한 모습.
그 후로 나는 뽑아낼 수 없는 몇 그루의 나무를 기르게 되었다.
‘청록파’ 시인으로 잘 알려진 박목월 선생이 1964년에 발표한 시 ‘나무’의 한 부분이다. 여행길에서 우연히 만난 나무를 통해 고독감을 느끼고 삶의 의미를 사색한다는 내용이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일상에 찌들어 있는 현대인들이 시인처럼 나무를 보고 깊은 생각에 빠지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초록이 가득한 숲이나 나무들을 보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하고 후련한 느낌을 받게 된다.
1980년 4월 5일 제35회 식목일을 맞아 경기도 포천에서 식목 행사를 하는 모습(산림청 제공)

숲의 직접 이용효과보다는 간접 효용 증가

나무를 심는 날 ‘식목일’이 있는 4월이다. 중장년층들은 국민학교라고 불렸던 초등학교 시절, 이맘때쯤 되면 동요 ‘메아리’를 목청껏 불렀던 기억이 날 것이다.
“산에 산에 산에는 산에 사는 메아리 언제나 찾아가서 외쳐 부르면 반가이 대답하는 산에 사는 메아리 벌거벗은 붉은 산엔 살 수 없어 갔다오”라는 가사처럼 요즘은 ‘메아리가 반갑게 대답하지 않는’ 벌거숭이 민둥산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그렇지만 2006년 식목일이 휴일에서 제외되면서 학교나 관공서, 기업들에서 했던 나무심기 행사를 거의 찾아보기 힘들고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잊혀 간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나무와 숲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다양한 형태로 관계를 맺어왔다. 과거에는 식량 공급원이나 땔감, 건축자재 등으로 쓰이는 동시에 종교나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나무를 직접 활용해 기대할 수 있는 효용가치는 많이 줄었다. 그렇지만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내뿜어 만드는 대기질 개선 효과, 산사태와 가뭄 방지, 산림휴양, 생물다양성 확보, 온실가스 흡수, 열섬완화 등 간접적이고 공익적인 효과는 오히려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기후변화라는 관점에서만 보더라도 숲과 나무는 엄청난 일을 한다. 과학자들이 이산화탄소 포집·저장 기술을 개발하고 있지만 숲만큼 효율이 높지는 않다. 산림청에 따르면 국내에 조성된 산림은 전체 탄소량의 약 7%(9억 3500만t)를 저장한다. 숲을 이루고 있는 나무와 흙, 낙엽이 이산화탄소를 잡고 있는 것이다.

중소형 녹지가 온난화에 더 효과적 대응

사람들은 나무나 숲 가꾸기라고 하면 어렵고 거창하게 생각하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는 연구결과들이 많다. 2015년 영국 지속가능성 산림·기후변화 연구센터 과학자들은 도심의 자투리땅을 이용해 나무를 심거나 식물을 키우는 것이 삶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를 임학분야 국제학술지 ‘도시 임학 및 원예학’에 발표했다.
도심 자투리땅을 이용해 나무를 심거나 식물을 키우는 것만으로도 열섬 현상은 물론 대기오염까지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각종 개발공사를 진행한 뒤 형식적으로 대형 녹지공간을 덜렁 하나 만들어 놓는 것보다는 도심 곳곳에 소형에서 중형 크기의 녹지를 많이 조성하는 것이 지구온난화로 나타날 수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말이다. 더군다나 도시인들의 정서 안정에도 커다란 공원 하나보다는 곳곳에 있는 작은 도심 숲이 훨씬 도움이 된다고 연구팀은 지적했다.
같은 차원에서 2019년 9월 미국 워싱턴대학교 환경산림과학부 과학자를 중심으로 네덜란드, 영국, 스웨덴, 독일, 중국, 캐나다 7개국 31개 연구기관이 참여한 공동연구팀은 도시 개발을 할 때 자연 그대로의 환경을 최대한 보존하는 것이 도시민들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를 기초과학 및 공학 분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발표한 바 있다.
도시 개발을 할 때 건물을 짓고 남는 땅에 녹지나 공원을 조성하거나 설계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연을 우선에 두고 지역개발을 하는 것이 도시화에 따른 환경문제와 도시민의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다.
이산화탄소 증가로 인해 나타나는 지구온난화 속도를 늦출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나무심기, 숲 가꾸기이다.(미국항공우주국(NASA) 제공)

홈가드닝·소공원, 정신건강과 행복지수 높여

지난해 영국 엑서터대 의대 부설 유럽환경·보건연구센터, 왕립원예학회, 환경보호공사(Natural England) 공동연구팀은 집 근처 가까운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집 안에 작은 정원을 들이는 것이 우울감과 스트레스를 해소할 뿐만 아니라 좋은 집이나 부유한 지역에서 사는 것보다 건강과 삶의 만족도를 더 높여준다는 연구결과를 환경 및 건축공학 분야 국제학술지 ‘조경과 도시계획’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환경보호공사가 2009~2016년 영국인 7,814명을 대상으로 거주지, 소득수준, 자연에서 보내는 시간, 실내 정원 가꾸기 여부 등을 묻는 설문조사를 분석했다. 그 결과 자연에서 시간을 보내는 시간이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신체적 건강, 심리적 행복수치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거주지와 가까운 곳에 숲이나 공원이 없는 경우 실내에 식물을 들여 작은 정원처럼 꾸미고 가꾸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정신적, 신체적 건강상태가 우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의 삶에 대한 만족도는 좋은 집이나 부유한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보다도 더 높은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이처럼 녹지공간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조경분야 뿐만 아니라 뇌과학 쪽에서도 다양하게 연구되고 있다.
1984년 미국 델라웨어대학교 로저 울리히 교수(지리학)는 펜실베니아주 교외에 있는 요양병원에서 담낭제거 수술을 받은 환자 46명을 관찰한 결과 창으로 작은 숲이 내다보이는 곳에 입원했던 환자 23명은 담벼락만 보이는 병실에 입원한 환자보다 빨리 치유돼 입원기간이 짧았다는 연구결과를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발표한 바 있다.
1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에서 우울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럴 때 가까운 마트나 화원에서 평소 눈여겨봤던 식물을 구입해 창가나 베란다에서 정성껏 길러보는 것도 코로나 우울증을 날리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자연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갖고 있는 도심 속 녹지는 도시민의 정신건강과 도시의 대기오염 완화에 도움을 준다.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의 한 가운데 위치한 ‘워싱턴 수목원’을 방문한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다.(미국 워싱턴대 제공)

숲과 나무는 물론 집 안의 작은 화분 같은 것들도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들이 많다. 이 때문에 녹지공간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조경분야 뿐만 아니라 뇌과학 쪽에서도 다양하게 연구되고 있다.(픽사베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