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발견

건강한 장, 유익한 미생물이 만병통치약

장내미생물의 세계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실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전무후무한 감염병 확산이라는 특수한 요인 때문만은 아니라 많은 현대인들은 적은 활동량과 불규칙한 식습관, 불균형한 음식 때문에 변비, 설사, 과민성대장증후군 같은 소화기 질환에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
20세기 중반 이후부터는 과거에 찾아보기 어렵던 정신질환, 심혈관질환, 고혈압, 당뇨, 관절염, 골다공증 같은 질병에 시달리는 이들도 급증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모든 질병의 원인을 찾아가다보면 ‘장내미생물’과 맞닥뜨리게 된다. 보통 사람들은 장내미생물이라고 하면 ‘유산균 음료’ 정도를 생각하는데 과연 장내미생물은 무엇일까.
미생물

미생물

인체마이크로바이오옴 중 가장 주목받는 장내미생물

프로바이오틱스

마이크로바이옴은 미생물총()을 의미하는 ‘마이크로바이오타’와 유전체를 의미하는 ‘게놈’의 합성어이다. 인간, 동식물, 토양, 바다, 호수, 대기 등 모든 생태환경에서 서식하거나 공존하는 미생물과 유전정보 전체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제2의 게놈’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마이크로바이옴에 대한 관심이 본격화된 것은 2006년 미국 워싱턴대학교 제프리 고든 교수가 비만 쥐의 분변와 마른 쥐의 분변을 무균 쥐에 각각 주입한 결과 비만 쥐의 분변을 주입받은 생쥐가 쉽게 뚱뚱해진다는 연구결과를 과학저널 ‘네이처’에 발표하면서부터이다. 고든 교수의 연구결과 발표 이후 마이크로바이옴, 특히 장내미생물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다.
인체 미생물 수는 인간 세포 숫자보다 비슷하거나 약간 많은 39조 개로 알려져 있으며 대부분 대장이나 소장 등 소화기관에 집중돼 있다. 이들 장내 미생물을 모두 모아놓더라도 체중의 1~3%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사람이 분해할 수 없는 영양소를 분해해 소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본적인 역할 이외에도 면역계 질환, 퇴행성 뇌질환, 우울증, 양극성장애 등 정신질환을 유발하는 신경정신질환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들이 최근 속속 공개되면서 장내 미생물과 건강에 대한 연구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우주여행에서 꼭 필요한 것은? 건강한 장내미생물!

이탈리아 볼로냐대학교 약학·생물공학과, 브라질 파라이바연방대학교 식품공학과, 프랑스 소르본대 부속 피티에살페트리에르병원, 심장대사·영양학 연구소, 리옹1대학 의생명과학연구소, 독일 베를린 응용과학대학교, 본대학교 식품영양과학연구소 공동연구팀은 유익한 장내미생물이 혹독한 환경의 우주여행에서 우주인들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연구결과를 생물학 분야 국제학술지 ‘첨단 생리학’에 발표했다.
지난 2월 아랍에미리트(UAE), 중국은 화성궤도에 진입했고 미국은 화성탐사로버를 화성표면에 안착시키는데 성공했다. 내년에는 유럽(EU), 2024년에는 일본도 화성탐사를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성탐사는 기초과학적 관심뿐만 아니라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제2의 지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과학저널 ‘사이언스’는 인간이 화성에 거주하거나 화성 그 너머 우주여행을 할 때 우주방사선, 고독감, 우주곰팡이, 미세중력, 인적오류 총 다섯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이 중 미세중력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유인 우주탐사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무중력에 가까운 미세중력은 우주인의 뼈와 근육을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시신경과 안압에도 영향을 미쳐 시력 약화를 가져온다. 연구팀은 미세중력으로 인한 근육량 감소와 골밀도 저하는 소화기관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우주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보관하기 위해 동결건조한 뒤 방사선조사로 무균상태로 만들기 때문에 지구에서 먹는 음식과 비슷하게 만든다고는 하지만 맛과 영양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특수한 과정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우주인의 식단은 장내미생물을 교란시킬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우주여행과 관련한 여러 연구를 분석한 결과 우주인들의 장에는 장염을 유발시키는 박테리아가 증가하고 항염효과를 보이는 유익한 세균은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이는 감염과 염증에 취약하게 만들고 영양실조, 위장장애를 가속화시킬 수 있고 면역체계 결핍, 신경정신질환, 인지력 저하를 유발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거대한 우주를 탐사하고 정복하기 위해서는 작은 우리 몸속부터 제대로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SF 영화 ‘마션’은 인류의 화성 거주가능성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IMdB 제공)
2020년 7월 아랍에미리트(UAE)는 화성탐사선 ‘아말’을 가장 먼저 발사했다. (UAE MBRSC(모하메드 반 라시드 우주센터) 제공)

사회계층에 따라 달라지는 유익한 장내미생물

중산층과 빈곤층

한편 인류학이나 사회학 같은 분야 연구에서도 장내미생물은 직간접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미국의 오레곤대학교, 클라크오너스 교양대학교 공동연구팀은 빈곤층의 장내미생물은 숫자와 종류가 턱없이 적고 유익한 장내미생물도 많지 않다는 연구결과를 미국공공도서관에서 발행하는 국제학술지 ‘플로스 생물학’에 발표한 바 있다.
연구팀은 다양한 실험을 통해 중산층 이상과 빈곤층의 장내미생물 종류와 숫자를 비교해본 결과 빈곤층의 장내미생물 균총의 종류와 숫자가 눈에 띄게 차이를 보일 뿐만 아니라 유익한 장내미생물은 많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런 유익한 장내미생물의 부족 때문에 비만과 관련한 대사질환, 우울증과 알코올중독, 조현병과 같은 정신질환에 취약하게 된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사회경제적 불균형이 건강의 불균형과 격차를 더 크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몇 가지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예를 들어 저소득층의 산전, 산후관리를 통해 산모들부터 유익한 장내미생물을 확보하도록 하고 이것이 영유아들에게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한편 학교 급식에서 균형 잡힌 식단을 제공하고 학내에 정크푸드를 없애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학교 응용생태학과, 노스웨스턴대학교 인류학과, 노트르담대학교 생명과학과,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 공동연구팀은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인류가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가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은 장내미생물 덕분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장내미생물’ 전성시대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