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5년(세종 7년) 5월 7일 밤, 세종은 첨성대에 올라 윤사웅에게 “노인성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천문관 윤사웅은 남쪽 하늘을 가리키며 “전하, 남극노인성은 저기에 있사온데 눈으로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남극에 가깝고 높이 있사온데 제주 한라산이나 백두산 정상에 올라가면 보인다 하오나, 살펴볼 길이 없습니다”라고 전했다.
이 대화에서 나온 노인성은 남극성으로 오늘날 ‘카노푸스(Canopus)’라고 불리며 적위 -52정도 남반구에 위치해 있다. 제주 서귀포, 해담 등 남해 연안에서만 볼 수 있는 별이다 보니 예로 부터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수성(壽星)이자 길성(吉星)으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노인성이 나타나면 타라가 평안해진다고 믿었다.
세종은 노인성이 소문처럼 제주도와 백두산에서 볼 수 있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노인성은 관측되지 않았다. 4년 뒤 한라산으로 파견되었던 윤사웅은 노인성 관측에 성공했다. 윤사웅은 춘분에는 보지 못했으나 추분에는 바다가 맑고 하늘이 개여 노인성을 볼 수 있었다. 그는 관측한 노인성을 그림으로 그려 세종에게 바쳤다.
사웅아.
말로만 듣던 노인성을
정말 눈으로
확인했단 말이냐.
네 전하.
제가 직접 눈으로다
보고 이렇게
그려왔습니다.
윤사웅이 노인성을 관측했다는 말에 세종은 뛸 듯이 기뻤다. 왕의 신분이 아니라면, 한라산으로 달려가고 싶은 맘이었다. 세종은 노인성에 대해 자세히 묻고는 수고했다며 술을 따라주었고 윤사웅의 벼슬을 올려주었다. 노인성은 비록 백두산에서는 관측되지 않는 별이었지만, 제주도에서는 특정 시기에 볼 수 있는 별이었다.
하늘을 수놓은 천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세종과 그 뒤를 따르던 신하들. 세종 시대의 천문학 발전과 만들어진 많은 관측기구는 조선의 국격을 높이기도 하였으나, 어디까지나 국가의 안위와 나라의 평안을 위한 것이었다. 어느 임금도 갖지 않은 하늘에 대한 세종의 호기심은 백성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해주고 싶은 애민정신의 발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