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과학읽기

‘마리 퀴리’가 보여준
과학의 자화상

과학의 빛과 그림자 속 인류애 추구했던 마리 퀴리

마리 퀴리
2020년 11월에 개봉한 ‘마리 퀴리’는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누적 관람객수 2만 명을 조금 넘는 수준을 기록하며 크게 주목받지 못한 영화이다. 오랜만에 과학 위인을 다룬 신작이어서 관심을 모았지만 흥행하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영화의 가치까지 외면할 필요는 없다.
영화 마리 퀴리는 원제 라디오액티비티(Radioactivity)라는 책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기존에 우리가 갖고 있던 마리 퀴리에 대한 선입견을 깨고, 인간적인 측면이 부각된다. 위인전에서 읽던 마리 퀴리와 다르다. 사생활의 면면들이 많이 등장하기 때문에 새롭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 영화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영화 자체가 실화를 바탕으로 잘 구현된 덕분도 있지만, 무엇보다 현재 우리의 상황과 중첩되기 때문이다. 열악한 연구 환경, 여성에 대한 차별, 과학의 빛과 그림자, 새로운 발견의 허상과 부작용 등 여러상황 속에서 우리는 10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한 고민과 선택을 계속하고 있다. 영화는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살피면서 미래를 고민해 보는 가치를 선물한다.
영화를 보면 1900년대 당시 과학 기술인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연구했는지 간접 체험할 수 있다. 그 현장을 보면서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과학 발전의 기반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쾌적한 연구 환경에 익숙한 요즘 연구자들에게 신선한 자극이 될 수 있다. 특히 마리 퀴리가 어떻게 실험을 하면서 방사능을 발견했는지 보여주는 스토리가 돋보여 과학기술인 입장에서 인상적인 영화가 될 수 있다.

라듐, 어떻게 발견했나?

퀴리 부부
소르본느 대학 광장

마리 퀴리가 라듐을 발견했을 때는 파리 소르본느 대학 박사 과정 학생이었다. 마침 빌헬름 뢴트겐이 X-ray를, 앙투안 앙리 베크렐이 우라늄에서 나오는 우라늄 레이를 발견한 시기였다. 마리 퀴리는 우라늄 광산에서 나오는 피치블렌드라는 광물에서 우라늄을 얻는 도중 일반적인 우라늄과는 다른 원소가 존재함을 알아냈다. 실험과정에서 우라늄 보다 더 강력한 우라늄 레이를 피치블렌드에서 나올 수 있다는 단서를 얻게 됐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지속적인 실험으로 라듐과 폴로늄을 발견해냈다.
독일 은광에서 발견된 피치블렌드를 두고 당시 광부들은 은이 아닌 이 광물을 재수 없는(Pech) 광물(Blende)이라고 불렀다. 학명은 우라니나이트(Uraninite). 피치블렌드에서 우라늄이 발견되자 본격적인 채굴이 시작됐고, 마리 퀴리는 실험 초기 본국인 폴란드의 피치블렌드로 실험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영화를 보게 되면 지저분한 실험공간에서 퀴리 부부가 광석을 깨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퀴리 부부는 4톤의 광물, 40톤의 용액, 400톤의 물을 써가며 실험했다. 피치블렌드에는 라듐 뿐만 아니라 온갖 물질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광물에서 라듐을 추출하기 위해 4톤의 피치블렌드를 잘게 부수고, 40톤의 강산성 분리용액과 400톤의 물을 써서 라듐을 추출했다. 결국 얻어진 라듐의 양은 수mg 정도였다. 단순 분리공정이지만 당시 방사능은 에너지보존 법칙에 위배되는 현상이었기에 퀴리부부는 해당 공로로 1903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라듐, 어떻게 사용됐나?

라듐을 활용한 시계
라듐을 활용한 화장품

라듐은 ‘빛을 내다’라는 뜻으로 Radius에서 유래됐다. 퀴리 부부는 어두운 곳에서 푸른빛을 발산했기에 라듐을 ‘라디오액티비티’라고 이름을 지었다. 푸르스름하게 인광을 내는 물질이므로 사람들이 매혹됐다. 마치 영생의 약을 보는 것처럼 사람들은 엄청나게 좋은 물질일 것이라고 여겼다.
이렇게 라듐이 대유행 하면서 초창기에는 시계판에 바르는 야광도료로 사용됐다. 새로운 원소 발견과 노벨상 수상으로 라듐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라듐을 이용한 상품들이 우후죽순으로 등장했다. 영생의 물로 라듐 생수가 팔렸다. 라듐 치약, 라듐 화장품, 라듐 초콜릿 등 라듐 시리즈가 봇물을 이뤘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사기꾼들이 많아 라듐으로 인한 인명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비싼 라듐을 제품에 넣을 수 없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가짜 라듐 제품들만 팔린 덕분이었다.
라듐의 위험성을 알린 계기는 ‘라듐 걸즈’ 사건이다. 1925년 시계 도장 공장에서 라듐을 야광도료로 바르던 젊은 여성들이 궤양·종양 등의 연이은 피해 소송을 제기하면서 라듐의 위험성이 알려졌다. 결국 야광도료를 비롯해 모든 제품에서 라듐은 사라졌다.

방사선의 빛과 그림자

마리 퀴리 포스터
마리 퀴리 영화에서는 방사선의 장점보다 단점이 부각됐다. 히로시마 원자폭탄과 체르노빌의 원자력 발전소 붕괴사고와 같은 어두운 장면들이 등장한다. 마리 퀴리는 라듐이 암을 치료할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했지만, 반대로 이 원소가 무시무시한 핵무기로 이용될 수 있음도 알게 되며 절망에 빠지기도 한다.
마리 퀴리가 이뤄낸 세기의 발견은 사용 목적에 따라 나쁘게 혹은 좋은 용도로 쓰일 수 있다. 방사선은 원자폭탄으로 활용된 바 있지만, 암 치료·영상의학·문화재보존·식물 품종개량 등 다양하게 이로운 용도로도 잘 활용되고있다.
특히 방사선은 의료용으로 가장 많이 사용된다. 가장 유명한 것은 엑스레이 방사선사용이다. 방사선에서 나오는 빛을 이용해 멸균하는데도 사용되고, 종자를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는 처리방법으로도 사용 중이다. 빛의 에너지가 워낙 강력하다 보니 다양한 새로운 첨단소재를 연구하는데도 쓰인다.
마리 퀴리는 방사선을 활용한 X-ray 장비를 싣고 수많은 병사들의 목숨을 구하기도 했다. X-ray 장비를 활용해 정말 꼭 필요한 환자들에게만 절단수술을 시행할 수 있도록 도왔다. 당시에는 병사들이 신체 손상이 조금만 있더라도 무조건 신체 일부를 절단했었다. 첫째 딸 이렌 퀴리와 함께 1차 세계대전 전장을 누비며 100만 명 이상의 부상병을 촬영해 많은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마리 퀴리는 당시 방사선에 대한 안전장치가 갖춰지지 않은 환경에서 연구를 이어갔기 때문에 방사선의 지속적인 노출로 건강이 악화돼 세상을 떠났다. 남편인 피에르 퀴리도 방사선 노출로 인해 후유증을 심하게 앓았다. 라듐과 같이 반감기가 긴 물질인 경우 지속적인 인체에 해를 끼치게 된다.
마리 퀴리 사망 후 시신이 들어간 관에는 방사선 노출 때문에 1인치 이상 두께의 납을 둘러쌌다. 지금도 마담 퀴리 박물관에는 연구노트와 실험장비 같은 것들이 여전히 방사선을 뿜고 있어 실험실에는 모든 것이 차폐돼 있다.
그녀의 몸과 물품에서 뿜어져 나오는 방사선은 차단됐지만, 100여년 전 한 여성 과학자가 보여준 남다른 연구 열정은 영화를 통해 현 세대에 그대로 퍼진다. 새로운 세상을 만든 위대한 과학 라듐, 어떻게 사용됐나? 자 마리 퀴리를 다시 들여다보자.
퀴리 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