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속 과학읽기

코페르니쿠스가 머물던
왕들의 도시

폴란드 크라쿠프

폴란드 크라쿠프는 왕들의 대관식이 거행되던 도시다.
바르샤바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500여년 간 폴란드 정치, 문화의 중심지였다.
크라쿠프는 ‘지동설’로 천문학의 근간을 뒤흔든 코페르니쿠스의 흔적이 깃든 도시이기도 하다.

‘지동설’을 잉태한 동유럽 최고 대학

야기엘론스키 대학교 전경

크라쿠프의 구도심에는 폴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야기엘론스키 대학이 있다. 1364년 카지미에즈 비엘르키 왕이 설립하고 왕비가 보석을 팔아 세운 야기엘론스키 대학은 동유럽 최고의 명문으로 손꼽힌다.
폴란드 태생의 코페르니쿠스는 1491년 이곳 대학에 입학해 천문학과 수학을 공부하며 ‘지동설’의 단초를 마련했다. 우주구조론, 광학 등을 배우며 천문학자로서의 소양을 쌓고 기존 천문이론들 사이의 모순을 인식하게 된 것도 이 시점이었다. 야기엘론스키 대학은 후에 크라쿠프 대학으로 개명했는데, 대학중앙도서관에는 코페르니쿠스가 집필한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등 중세시기에 작성된 원고가 보관돼 있다.
우주와 지구는 둥글고,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전통 교회의 입장과는 배치되는 파격적인 주장이었다. 중세의 세계관을 뒤흔들었던 그의 책은 당시에는 금서로 지정됐다가 19세기 초에야 일반에 공개됐다. 코페르니쿠스의 이름을 딴 과학관은 수도인 바르샤바에 들어서 있다.

초대형 중세 광장과 성 마리안 성당

크라쿠프의 역사지구에 들어서면 감회가 새롭다. 세계문화유산 도시를 가로지르는 대로는 예전에 왕들이 대관식을 위해 행차하던 길이었다. 시장광장은 유럽에 남아 있는 중세 광장 중 두 번째로 넓은 규모를 자랑한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의 바통을 잇는 4만m2의 광활한 광장은 예전에는 귀족들의 사교장으로 쓰였다. 왕들이 쉬어가던 광장에는 노천카페들이 즐비하고, 폴란드의 음악가 쇼팽의 피아노곡이 돌길위에 고요하게 내려앉는다.
벽돌의 성 마리안 성당과 중세 시장광장

시인 아담 미츠키 에비츠의 동상

광장 중앙에는 ‘폴란드의 세익스피어’로 불리는 시인 아담 미츠키 에비츠의 동상이 서 있다. 동상 뒤편의 직물시장 수키엔니체에서는 침대보며 식탁 커버 등 서민들의 용품을 판매한다. 시장 2층은 폴란드의 조각과 회화를 전시하는 국립박물관이다.
광장 옆 1220년 건축된 성 마리안 성당에서는 매시간 탑 꼭대기에 나팔수가 직접 나팔을 분다. 타타르족의 침입을 알리던 파수병이 나팔을 불던 중 화살에 맞아 죽은 사연을 기리고 있다.

왕의 대관식이 거행된 바벨성

크라쿠프의 바벨성

왕이 지나쳤던 플로리안스카 거리는 바벨성으로 연결된다. 비스와 강변의 언덕위에 위치한 바벨성은 11세기에 건축되기 시작해 16세기에 완성된 모습을 갖추게 된다. 대성당, 지근문트 탑 등의 부속물들이 500년 역사 속 다양한 건축양식을 자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바벨성은 폴란드 국왕들의 거처로 사용되던 곳이었고 수도가 17세기 바르샤바로 옮겨진 뒤에도 대관식만은 이곳 대성당에서 거행됐다. 바로크 양식의 대성당과 르네상스풍의 지그문트 탑은 작고 소박하지만 예술미가 뛰어나다. 바벨성은 폴란드 주민들에게는 성지로 여겨지는 공간이다.
크라쿠프는 유대인 학살을 다룬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배경이 된 도시이기도 하다. 중앙 시장광장이나 유태인 거주지였던 크라코브스카 거리가 영화 전반의 배경이었다. 이곳에서는 예전 유태인들을 위한 벼룩시장이 아직도 들어서고 있으며 영화 촬영지를 둘러보는 투어도 인기가 높다. 영화 후반 유태인 학살의 현장이었던 아우슈비츠의 도시 오슈비엥침 역시 크라쿠프 인근에 위치해 있다.

세계유산 아우슈비츠와 소금광산

오슈비엥침의 아우슈비츠와 비엘리츠카의 소금광산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크라쿠프 인근의 명소다. 아우슈비츠는 크라쿠프 서남쪽으로 75km 지점에 있다. 아우슈비츠는 독일어 지명이고, 폴란드어로는 오슈비엥침이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유태인 수용시설을 활용해 만든 제 1수용소는 옛 모습을 고스란히 재현한다.
겉으로 보이는 아우슈비츠 전경은 동유럽 시골마을의 한 단상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문을 들어서면 고압전류 철조망과 어두운 해골 이정표가 드러나는 음울한 구조다. 전시관에는 당시 강제노동에 시달린 유태인들의 안경, 신발, 사진 등이 헝클어진 채 전시되어있으며 머리카락, 칫솔, 아기 우윳병 등이 남아 눈시울을 뜨겁게 만든다.
아우슈비츠 희생자를 추모하는 꽃과 등불

비엘리츠카 킹카 성당의 암염 조각상

비엘리츠카의 소금광산은 동굴 길이가 총 300km나 되고 역사도 700년이나 된 광산이다. 중세시대부터 지금까지 작업이 계속되고 있는 곳으로 한때 폴란드 왕궁 전체 수입의 3분의 1이 소금 광산에서 나왔다고 전해진다.
이곳에서 일하던 광부들은 암염으로 조각된 예술품들을 만들어 냈다. 지하 110m에 위치해 있는 킹카 성당은 소금 광산 여행의 백미로 역대 왕과 샹들리에 조각들이 찬란하게 재현돼 있다. 동굴 안에 작은 연못도 있고 유럽에서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우체국도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