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6일 유럽의회(European Parliament) 총회는 원자력과 천연가스를 녹색금융 대상에 포함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 EC)의 녹색 분류체계(EU Taxonomy; EU Green Taxonomy) 보완위임법률(Complementary Climate Delegated Act)안에 반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EU 이사회(Council of the EU; The Council) 심의가 남아있으나, 27개국 중에서 20개국 이상이 반대하여 부결될 가능성은 전혀 없으므로 실질적으로는 최종 확정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지난 2월 초 집행위원회에서 발표한 보완위임법률은 2023년 1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국내에서는 EU 택소노미에 대한 오해가 많고, 특히 원자력과 관련하여 우리나라에 미칠 영향에 대해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EU 택소노미의 의미와 원자력 관점의 시사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EU 택소노미(녹색 분류체계)는 환경 및 기후 목표에 부합하는 경제활동 목록을 제시하여 지속가능한 경제활동 투자(녹색 금융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것이다. 택소노미가 정부와 민간의 투자를 강제로 제한하는 요건은 아니지만, 여기에 속하는 경제활동은 정책금융 등 다양한 인센티브와 민간의 자발적 투자 우선순위 조정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한다.
EU 택소노미는 2019년 말 채택되어 2020년 7월에 발효된 EU 택소노미 규정(Taxonomy Regulation)에 근거하고 있다.
EU 택소노미 규정에서는 다음과 같은 6가지 환경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아울러 녹색금융의 대상인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으로 분류되기 위한 조건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태양광, 태양열, 풍력, 해양에너지, 수력, 지열, 바이오에너지 및 에너지 저장 등은 2021년 채택되어 2022년 1월부터 시행 중인 위임법률(Climate Delegated Act)에 포함되었다. 물론 여기에는 에너지원 성격에 따른 기술선별기준도 제시되어 있다.
그러나 원자력은 저탄소 에너지임에도 ‘다른 환경목표에 의미 있는 피해를 주지 않을 것’이라는 요건 충족 여부에 대한 이견으로 결정이 미뤄졌다. 아울러 천연가스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석탄의 1/2 수준에 이르는 화석연료이긴 하지만, 재생에너지 확대 과정에서 간헐성과 변동성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측면에서 논의 대상이 되었다. 결국 EU 집행위원회는 원자력과 천연가스를 한꺼번에 묶은 보완위임법률(Complementary Climate Delegated Act)안을 2022년 2월 2일 확정하여 발표했고, 이번에 유럽의회에서 승인되었다.
보완위임법률(Complementary Climate Delegated Act)은 길지는 않지만, 4개의 문서로 이루어져 있어서 읽기가 불편하고,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 필자가 이해한 대로 쉽게 요약하면, 그린 택소노미에 포함된 원자력 관련 경제활동은 다음 세 가지이다.
위의 경제활동이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으로 인정받으려면 다양한 기술선별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 유럽의 엄격한 안전요건의 준수가 필수적이며, 다음 두 가지 중요한 기준도 제시되어 있다.
탄소중립을 위한 원자력의 기여[자료: OECD/NEA(2022)]
1) 우리 원전의 유럽 수출에 미칠 영향
EU 택소노미가 우리나라의 EU 지역 원전 수출에 미칠 직접적인 영향은 크지 않을 것 같다. 그렇지만 원자력이 택소노미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다면, EU 내에서 원자력의 위상이 저하되고 국제적으로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임을 무시할 수는 없다. 따라서 이번 보완위임법률의 확정은 원자력이 배제되었을 경우와 비교하여 EU 내에서 원자력 이용을 촉진하고 우리 수출시장도 확대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판단한다.
우리나라 원전(APR1400 및 APR1000 등)의 EU 수출 관점에서는 이번에 채택된 EU 택소노미 보완위임법률이 제약조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으나, 필자의 판단은 다음과 같다.
요약하면, 이번 보완위임법률 채택은 채택되지 않았을 경우와 비교하여 직간접적으로 우리나라 원자력 수출시장을 확대할 가능성이 크며, APR1400이나 APR1000의 EU 수출에 별다른 제약 조건을 부과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다.
2) K-택소노미 등 국내 에너지 정책에의 시사점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인도, 영국, 캐나다 등 현재 원자력을 이용 중인 거의 모든 국가가 탄소중립을 위한 원자력의 기여를 인정하면서 역할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탈원전을 추진하는 국가는 대만을 제외하고 모두 유럽에 있다. 어느 지역보다도 원전에 대한 국가 차원의 찬반 논란이 분분했던 EU에서까지 원자력을 지속가능한 에너지에 포함한 것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후 악화되었던 원자력에 대한 세계적인 인식이 크게 바뀌었다는 것을 상징한다.
원전을 자력으로 건설할 수 있는 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탈원전 대열에 섰던 우리나라는 최근 원전-신재생 조화 정책으로 국가 에너지 정책을 다시 전환한 바 있다. 유럽의회에서 집행위원회 법률안을 승인하지 않았을 경우 국내에서 전개되었을 상황을 상상해보면, 이번 유럽의회 총회의 결정은 탈원전 정책에서 막 탈피한 우리나라에도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부존 에너지자원이 거의 없는 산업국가로서, 원자력발전소를 자력으로 건설할 뿐만 아니라 수출경쟁력까지 갖춘 우리나라가 원자력을 중요한 탄소중립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다.
EU에서 기술선별기준으로 부과한 2050년 고준위폐기물 처분시설 운영이나 2025년 이후 사업에서 사고저항성 핵연료 적용 등의 조건은 미국이나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어느 나라에서도 적용하지 않는 것이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EU 국가 간의 정치적 타협의 결과이고, 특히 EU에서 유일한 원전 공급국인 프랑스의 이익을 극대화한 조건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EU에서만 적용하는 이러한 조건들을 K-택소노미에서 심각하게 논의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EU 택소노미에서 제시한 적용 연도 등을 국내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더욱 의미가 없다. EU에서도 원자력을 지속가능 에너지로 공식 인정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럼에도 ‘원전사고에 대한 안전 확보’와 ‘사용후핵연료 안전관리’가 원자력 이용 확대 여부를 좌우하는 핵심 문제인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대다수 국민이 공감하는 수준의 원전 안전성 확보와 확고한 비상대응체계 구축은 매우 중요하다. 아울러 고준위폐기물 처분시설 부지의 조속한 확보, 최종 처분 전 사용후핵연료의 안전한 저장, 안전하고 효율적인 최종 처분을 위한 기술 향상과 최종 처분 부담을 줄이는 처리기술 개발 등을 위한 체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고준위폐기물 최종처분시설 부지 확보를 위한 구체적인 절차가 국민 공감대 하에서 조속히 시작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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