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포커스

국가 경쟁력의 한 축, 방사선 기술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한 지도 2년이 넘었다. 각국에서 신속하게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나선 덕에 진정 국면에 들어서는 중이다. 최근 들어 ‘포스트 코로나’, ‘엔데믹’과 같은 용어가 언급되다보니, 필자는 2010년에 종식 선언했던 다른 팬데믹이 떠올랐다. 바로 2009년에 유행한 ‘신종 인플루엔자A’다. 당시 사전에 개발됐던 치료제 ‘타미플루’가 있어 비교적 쉽게 대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방사선’이라는 숨은 지원군이 있었다. 방사선 기술의 일종인 가속기를 이용해 신종 플루의 단백질과 신약의 결합구조를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종류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방사선은 빛이 통과하지 못하는 곳도 뚫고 들어갈 정도로 투과력이 높다. 따라서 원자나 분자의 결합에 영향을 가해 물질 자체의 구조나 성질을 바꿀 수 있다. 기존의 물질 구조를 자세히 분석하거나 새로운 소재를 만드는 데 쓰이는 이유다. 실제로 방사선은 타미플루 같은 의료계, 산업계, 심지어 사회문제까지 다방면에 기여하고 있다.

우선, 병원에서 마주하는 X선 검사, CT(컴퓨터단층촬영), PET(양전자단층촬영) 모두 방사선의 특성을 이용한 검사 장비다. X선과 CT는 외부에서 방사선을 쪼여 몸의 이상을 검사한다. 반면, PET는 몸속에 방사성의약품을 주사해 밖으로 방출되는 방사선을 확인하는 원리로 질병을 진단한다. 상대적으로 인체 투과력은 약하나 세포를 죽이는 힘이 강한 방사선 유형을 이용하면, 치료용 방사성의약품도 제조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요오드-131 mIBG’는 신경모세포종 등 희귀소아암 치료에 효과적인 방사성의약품이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이것의 원료로 사용되는 ‘요오드-131’을 국내에서 유일하게 공급하고 있다. 올해 착공식을 앞둔 연구원 ‘수출용신형연구로’가 2027년에 완공된다면 테크네튬-99m, 루테튬-177 등 다양한 고부가 의료용 방사성동위원소도 생산할 수 있게 된다. 국내 자급은 물론 본격적으로 해외수출에도 나서는 기회가 될 것이다.

산업계는 어떨까. 전자제품에 필수인 ‘대전력용 반도체’를 만들 때도 방사선 기술이 활용된다. 반도체 웨이퍼는 주로 부도체인 실리콘(Si) 소재로 구성된다. 여기에 극미량의 인(P)을 넣으면 특정 조건에만 전기가 흐르는 ‘반도체’가 된다. 원자력연구원은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에서 ‘중성자 핵변환 도핑(NTD)’ 기술을 이용해 반도체의 품질을 높였다. 실리콘에 인을 직접 투입하는 일반적인 화학 공정과 달리, 실리콘 단결정에 중성자를 쪼여 기존 원자핵 중 극미량을 인으로 변환시키는 원리다. 인을 균일하게 분포시킨다는 장점이 있어 전기자동차, 풍력발전소 설비 등의 전기변환장치 구성에 최적이다.

한편, 방사선은 환경오염, 감염병 등 국민 생활 문제와도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다. 특히 전자선을 이용한 ‘미세먼지 모니터링 및 저감 기술’ 개발이 활발하게 논의 되고 있다. 베타선이라고도 불리는 전자선은 방사선의 일종으로, 1초 안에 오염 물질의 분자구조를 파괴·분해할 수 있어 환경 복원 기술로 주목받는다. 이외에도 방사선이 화합물을 분해하거나 살균한다는 점을 살려, 폐수 처리나 문화재 보존 관리에도 쓰인다.

지난 2월, 원자력이용개발전문위원회에서는 제3차 방사선진흥계획을 심의·의결했다. 미래 수요에 대응하는 방사선 융합 신기술을 창출할 수 있도록 관련 산·학·연에 지원체계를 마련할 예정이다. 이처럼 방사선은 원자력 연구에서 중요한 하나의 축이다. 그리고 여러 분야를 관통하는 ‘횡적 기술(Cross-enabling Technology)’이기도 하다. 팬데믹, 우크라이나 사태 등 급변하는 세계흐름을 보며 국가 경쟁력의 중요성이 커진 만큼, 방사선 기술로 우리나라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