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속 과학읽기

‘WWW’가 태동한 호숫가 국제도시

스위스 제네바

스위스 제네바는 레만호 서쪽의 호반 도시다. 호수 너머 알프스가 어우러진 도시는 세계 국제기구들이 들어선 곳으로 명성이 높다. 제네바는 첨단물리학 연구소가 있고, 월드 와이드 웹(WWW)이 태동한 도시이기도 하다.

세계 최대 입자 가속기와 ‘WWW’의 탄생

레만호, 유엔본부 등은 제네바를 수식하는 요소들이다. 프랑스와 인접한 도시에는 거리에 프랑스어가 리드미컬하게 쏟아진다. 접경의 도시에서는 일찍이 철학자 마틴 루터, 종교개혁가 칼뱅, 바이런, 볼테르, 레닌 등을 받아들였다. 문화·사상에 대한 관용은 제네바가 국제도시로 성장하고 과학의 행보에 동참하는 마중물이었다.

제네바공항 옆, 프랑스와 인접한 국경 지대에 있는 지역에는 첨단물리학을 연구하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가 자리하고 있다. 연구소는 총 길이 27km인 세계 최대 입자 가속기를 갖추고 있다. 20여 개국 1,000여 명의 과학자들은 양성자 등을 빛에 가까운 속도로 가속해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 내는 입자 물리학 실험을 진행 중이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는 전 세계 웹페이지의 공용 표시인 ‘월드 와이드 웹(WWW)’이 태동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1989년 연구원들의 효율적인 자료공유를 목적으로 시작된 프로젝트는 월드 와이드 웹(WWW)으로 확대 발전한다. 연구소는 세계 최초로 웹사이트를 오픈한 뒤 1993년 ‘WWW’을 일반에 무료 공개하며 본격적인 인터넷 시대를 열게 했다. 지금도 유럽입자물리연구소에는 세계 최초의 웹페이지가 보존돼 있다.

연구소는 2013년 미니 빅뱅 실험으로 ‘힉스’ 입자를 발견해 우주의 탄생 비밀을 밝혀내는 대업적을 이뤄냈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는 세계 공동의 과학연구를 위해 1954년 출범했으며, 댄 브라운의 소설 <천사와 악마>에서 반물질을 도난당하는 장소로도 등장했다.

유엔(UN), WTO, WHO 등 국제기구, 유럽 교통의 요충지, 풍족한 금융과 자본 등은 제네바가 과학기술과 소통하는 큰 밑거름이었다. 제네바를 품은 호수 주변으로는 생명과학단지, 바이오테크단지가 나란히 조성돼 있다.

호수와 트램, 명품숍이 어우러진 거리

제네바는 로망이 깃든 도시다. 호수와 알프스가 담긴 풍경만으로도 가슴을 뛰게 한다. 느리게 달리는 트램, 빛바랜 가로등은 운치를 더한다. 도심 한가운데에는 견고하고 낮은 건물 사이로 론강이 흐른다.

16~18세기 건축물이 담긴 부르 드 푸르 광장은 구시가의 중심이자 휴식이 담긴 공간이다. 성 피에르 대성당과 시청사를 지나 고서점과 옛 가게, 클레멘타인 소녀 동상이 거리를 단장한다. 고색창연한 북카페들은 이곳 주민들의 일상이 녹아든 브런치 식당이기도 하다. 칼뱅 탄생 400주년 기념비가 들어선 바스티옹 공원은 참나무, 너도밤나무가 늘어선 풍경 안에 주민들의 휴식과 놀이가 머문다.

레만호와 나란히 늘어선 몽블랑 거리는 제네바 최대의 번화가로 노천카페가 즐비하다. 은행 건물 옆 명품 상점만 둘러봐도 고품격 제네바가 느껴진다. 론강과 호수의 경계인 몽블랑 다리를 건너면 영국공원, 제또 분수다. 영국공원의 꽃시계는 계절마다 6,500 꽃송이로 새롭게 단장된다. 매년 요트대회가 열리는 제또 분수 일대는 겨울에도 사람들이 수영을 즐기는 이색 포인트로도 유명하다.

제네바에서는 그랑 테아뜨르 오페라 하우스, 아리아나 유리 공예 미술관 등을 둘러보며 수준 높은 예술을 향유할 수 있다. 론강 상류의 포도 농장들은 와인 산지로도 명성 높다.

아티스트를 품은 레만호의 소도시들

제네바를 경유하는 열차는 레만호 북쪽 호숫가 소도시들과 연결된다. 배우 오드리햅번은 모르쥬의 작은 마을 트로세나를 산책하며 여생을 즐겼다. 올림픽의 도시 로잔은 음악, 연극, ‘핫’한 클럽과 카지노가 공존하는 제법 떠들썩한 도시다. 최고의 희극배우였던 찰리 채플린은 25년의 세월을 레만호숫가 브뵈에서 보냈다.

레만호 동쪽 끝, 몽트뢰에는 뮤지션들의 호흡이 닿아 있다. 광장에는 록그룹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의 동상이 호수를 바라보고 서 있다. 프레디 머큐리는 그의 생을 마감할 때까지 몽트뢰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음반 작업을 했다. 사후에 제작된 음반인 ‘메이드 인 헤븐’에는 몽트뢰에 있는 호숫가 동상이 재킷 사진으로 담겼다.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은 최고 수준의 반열에 올라 있다, 헤밍웨이는 몽트뢰를 배경으로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를 써 내려갔다.

몽트뢰의 호반 산책로는 시용성으로 연결된다. 바이런이 쓴 <시용성의 죄수>로 유명해진 성은 호숫가 바위 위에 견고하게 세워져 있다. 성은 첨단과학의 사연이 녹아 든 레만호, 알프스와 어우러지며 고풍스러운 풍광을 만들어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