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발견

팬데믹에서 인류를 구한 연구자,

찰나의 순간을 포착한 학자,

그리고 수상자 명단 사전유출 해프닝까지

 

한국에서는 추석 연휴였던 지난 10월 2일 노벨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사흘 동안 물리학상, 화학상 수상자가 발표됐다. 모두 예상했던 분야에서 수상자들이 나와 ‘이변’은 없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생리·의학상 - 코로나19 백신 개발자

노벨과학상 중 생리·의학상은 물리학상이나 화학상과 달리 발표 시간을 정확하게 지키는 부문이다. 그런데 올해는 발표 예정 시간보다 15분이 늦어지면서 예상 밖의 인물이나 연구에 상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그렇지만 이변은 없었다. 2021년 이후 매년 유력 수상자로 언급됐던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앞장선 과학자들에게 돌아갔기 때문이다.

2023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는 코로나19 예방백신으로 알려진 mRNA 백신 개발의 핵심적 원리를 제시한 헝가리계 미국 생화학자 커털린 커리코(68) 바이오앤테크 수석부사장(펜실베이니아대 의대 겸임교수)과 면역학자 드루 와이스먼(64)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의대 교수가 선정됐다.

mRNA는 유전정보를 가진 DNA로 단백질을 합성하는 과정을 연결해 주는 물질이다. mRNA는 불안정하다는 특징 때문에 약물에 활용하기는 쉽지 않았다. mRNA 백신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있었다.

mRNA를 합성해 체내에 주입했을 때 선천면역 반응이 발생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인체는 선천면역과 후천면역이라는 두 가지 면역 체계가 있는데 백신 접종으로 면역이 생기는 것이 후천면역이다. 선천면역은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미생물이 침입하면 이를 제거하는 인체 반응이다. mRNA가 외부에서 들어오면 이 선천면역 반응이 나타나 백신으로 쓸 수 없는 것이다. 2005년 커리코 부사장과 와이즈먼 교수는 선천면역에 관련된 단백질이 외부에서 유래한 mRNA와 인체에서 생성한 mRNA를 구분할 수 있는지를 밝혀냈다. 또 이들은 mRNA를 구성하고 있는 염기 중 하나인 우라실(Uracil)의 화학구조를 조금 다르게 변형하면 선천면역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로 밝혀냈다. 이 원리를 바탕으로 2008년 선천면역 반응을 회피하는 mRNA를 생화학적으로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이 방법이 코로나19 mRNA 백신을 만드는 핵심 기술로 활용되었다. 두 사람의 아이디어는 신종 감염병 예방뿐만 아니라 암치료에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있다.

물리학상 - 전자의 이동 순간 포착 기술

물리학상 역시 가까운 시일 내에 노벨상을 탈 것으로 예상했던 연구자들에게 돌아갔다. 이번 물리학상은 아토초라는 찰나의 순간을 포착해 원자와 분자 내부 전자의 움직임을 탐구할 수 있는 가장 정밀한 방법을 찾아낸 피에르 아고스티니(82)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교수, 페런츠 크러우스(61) 독일 막스플랑크 양자광학연구소 및 루트비히 막스밀리안대 교수, 안 륄리에(65) 스웨덴 룬드대 교수가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아토초는 1초의 10억 분의 1인 나노초를 다시 10억 분의 1로 나눈 값으로 펨토초의 1,000분의 1에 해당한다. 가장 작은 원자인 수소의 주위를 도는 전자는 공전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150 아토초다. 기존 정밀 물리학으로도 관측이 쉽지 않은 속도인데 이번 수상자들의 연구 덕분에 자연의 초고속 현상을 관측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빠른 움직임을 관측하기 위해서 셔터 속도가 빠른 카메라와 플래시가 필요한 것처럼 자연의 초고속 현상을 관측하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관측 속도가 필요하다. 이번 수상자들은 아토초마다 펄스가 번쩍여 움직이는 전자의 순간을 포착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작품 ‘결정적인 순간’처럼 분자나 원자 속의 전자가 움직이는 찰나를 포착하는 기술이라고 하면 이해가 쉽다.

아직은 미시 세계의 관측 영역에서 주로 활용되고 있지만 추가 연구를 통해 나노과학의 초정밀 분석 도구에서 물질의 성질이나 양자적 현상을 인위적으로 제어하는 도구로 쓰일 수도 있다. 전자가 아토초에서 움직이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 전자 제어가 가능해진다. 이렇게 되면 현재 나노초에서 작동하는 소자를 아토초 범위에서 동작할 수 있게 해 계산 속도가 향상된 꿈의 소자 개발도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화학상 - 수상자 명단 사전 유출 사고

화학상은 양자점 발견과 발전을 이끈 프랑스계 미국 과학자 문지 바웬디(62)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 루이스 브루스(80) 컬럼비아대 교수, 러시아계 과학자 알렉세이 예키모프(78) 나노크리스털스 테크놀로지 박사에게 돌아갔다.

양자점발광다이오드(QLED) TV의 핵심 기술인 양자점은 1980년대 초 미국 벨연구소 연구원이었던 브루스 교수와 예키모프 박사가 1983년과 1984년 <화학물리학 저널>에 아주 작은 반도체 결정을 발견했다고 발표하면서 알려졌다.

양자점은 수백에서 수천 개의 원자가 뭉친 덩어리지만 지름이 10㎚(나노미터·10억 분의 1m) 이하로 작아 양자 구속 효과를 포함한 다양한 양자역학적 특성을 나타내는 물질이다. 별도의 광원이 없어도 전압을 주기만 하면 스스로 빛을 낼 수 있어 발견 초기부터 디스플 재료로 주목받았다. 양자점의 가장 큰 장점은 재료 조성을 바꾸지 않고 결정 크기를 조절하는 것만으로 원하는 색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름이 작을수록 푸른빛이 강해지고 커질수록 붉은빛이 나오는 식이다. 1993년에는 바웬디 교수가 습식 합성법을 개발해 좀 더 효율적인 양자점 제작이 가능해지면서 연구가 활기를 띠었다. 최근에는 태양광 발전이나 바이오 이미징까지 다양한 응용이 시도되고 있다.

그러나 올해 화학상은 수상자의 면면이나 업적보다는 123년 노벨과학상 역사상 처음으로 수상자 명단이 사전 유출된 것으로 더 큰 화제를 일으켰다. 당초 노벨위원회는 스웨덴 현지에서 10월 4일 오전 11시 45분 수상자를 호명할 예정이었지만 왕립과학원의 실수로 2시간 40분 전에 보도자료 이메일이 전송되면서 명단이 공개됐다. 노벨위원회는 즉각 수상자가 선정되지 않았다고 해명에 나섰고 수상자가 바뀌거나 발표가 연기될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지만, 예정된 시간에 알려진 명단 그대로 발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