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속 과학읽기

갈릴레이 ‘천체망원경’의
단초가 된 도시

이탈리아 베네치아

이탈리아 베네치아로의 시간여행은 기분 좋은 방황으로 연결된다.
시간여행자들은 화려한 건축물 뒤에 숨겨진 도시의 과거에 주목한다.
베네치아는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였던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17세기 초
종탑에서 시연을 펼치며 천체망원경의 단초를 마련했던 도시다.

산마르코 종탑에서 거행된
망원경 시연

‘운하의 도시’ 베네치아의 중심에는 산마르코 광장이 있다. 숱한 여행자들이 오가는 화려한 광장과 성당, 두칼레 궁전 외에 이목을 끄는 건축물이 산마르코 종탑이다. 사자상과 가브리엘상이 인상적인 붉은색 종탑은 천체 망원경이 태동한 사연이 담긴 유서 깊은 장소다.
베네치아 주 파도바대학에서 수학 교수로 재직하던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1609년 8월 21일 산마르코 종탑에서 베네치아의 고위관료를 모아 놓고 고배율 망원경을 시연했다. 볼록렌즈와 오목렌즈를 결합해 만든 망원경을 통해 수평선 너머 배가 출현하는 것을 관측하는데 성공한다.
당시에는 충격적이었던 시연을 토대로 천체 망원경의 본격적인 개발과 연구가 이어졌다. 갈릴레이는 달 표면이 울퉁불퉁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광학기기로 목성의 위성 등 천체를 관측하는 것을 처음으로 이뤄낸다. 갈릴레이는 천체망원경을 통해 지동설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마련했으며 저서에도 기록을 남겼다. 산마르코 종탑 위에는 갈릴레이가 망원경을 시연한 기록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산마르코 종탑은 98.6 m로 이탈리아에서 가장 높은 높이를 자랑한다. 5개로 구성된 종탑의 종들은 의회 개원이나 교수형 집행 등을 알리는 기능을 수행했다. 종탑에 오르면 운하로 연결된 도시 베네치아와 인근 섬들의 윤곽이 수려하게 펼쳐진다.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 산타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 등도 색다른 윤곽으로 다가선다.
갈릴레이의 고배율 망원경 시연은 과학사에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국제천문연맹과 유네스코는 망원경을 시연한 1609년을 기준으로 400년이 된 2009년을 ‘세계 천문의 해’로 지정했다. 25유로 기념주화에는 갈릴레이가 새겨졌으며, 목성과 위성 탐사선의 이름도 갈릴레오호로 명명했다.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의 중심에 있는 붉은 색의 산마르코 종탑

운하 옆 펼쳐진
고풍스러운 건축물

산마르코 종탑 아래 베네치아는 몽환적인 아침을 만들어낸다. 먼 길을 달려와 굳이 며칠씩 베네치아에 머무르는 사람들의 욕망은 웅장한 산마르코 광장이나 두칼레 궁전의 영화로움이 전부는 아니다. 숙소 밖으로는 수로가 이어지고, 여명 속을 수상버스인 바포레토들이 운치 있게 가로지른다. 넉살 좋은 이태리 아저씨가 내어주는 모닝커피 한잔과 치즈 한 조각은 단출하면서도 향긋하다.
베네치아의 운하1
베네치아의 운하2

베네치아의 운하들은 일상과 가깝다. 운하는 삶터와 광장, 박물관, 열차역을 잇고 있다. 운하와 다리를 건너는 보행자들, 수상버스인 바포레토에 우르르 몰려드는 출근족들은 ‘바다 위를 부유하는 도시’에 온 것을 실감하게 만든다.
카날 그란데 운하에 들어선 고풍스러운 건물들만 스쳐 지나도 베네치아의 감동은 겹겹이 쌓인다. 베네치아 최초의 석조교각인 리알토 다리의 건축에는 미켈란젤로가 응모하기도 했다.
수로를 가르는 곤돌라들은 과열 경쟁을 막기 위해 일률적으로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다. 곤돌리에들이 목놓아 부르는 ‘산타루치아’는 사실 베네치아가 아닌 남부 나폴리가 배경이다. 우디 알렌은 그의 영화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Everyone says I love you)에서 곤돌리에와 사랑에 빠지는 낭만적인 공간으로 베네치아를 그려냈다. 작가 괴테, 음악가 비발디 등도 베네치아에 사연을 남긴 예술가들이었다.
산마르코 광장1
산마르코 광장2

옛 어촌 모습 남은 파스텔톤 섬

곤돌라가 오가는 좁은 수로와 달리 큰 바다로 나서면 커다란 나무 말뚝들이 바다에 박혀 선로 역할을 한다. 무질서 하게 꽂혀 있는 듯해도 나무마다 시 재산임을 알리는 인증표가 붙어 있다. 말뚝이 박힌 뱃길은 영화제로 알려진 리도, 유리공예로 유명한 무라노, 부라노 등 인근 섬들로 연결된다.
부라노 섬1
부라노 섬2
부라노 섬3

그중 부라노 섬은 파스텔톤 색상의 골목과 어민들의 삶이 도드라진 곳이다. 레이스 공예로 명성 높은 섬은 낡고 오래된 중세의 숨결을 간직한 베네치아 본섬과 달리 밝고 투명하다. 가옥에 정박해 있는 집들은 배들과도 색을 맞추고 있다. 부라노의 집들은 창문, 창틀, 문 손잡이, 굴뚝 모양까지 다채롭다.
베네치아와 주변 섬들은 원형 그대로의 것들을 훼손 없이 간직하고 있다. 대형 마트 역시 옛 건물의 내부를 개조해 들어섰다. 그 깐깐한 원칙들은 바다 위에 떠 있는 도시와 마을들의 가치를 드높였다. 영국의 역사작가 크리스토퍼 험버트는 ‘18세기 베네치아는 유럽이라는 진열장의 빛나는 보석이며 유럽여행의 즐거운 놀이터’라고 평했다. 이 말은 지난한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다.
베네치아의 곳곳을 오가는 곤돌라

리알토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