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바로 세종 연간에 편찬한 <칠정산>(내편)이다. 거기에는 서울 기준으로 각 날짜별 일출·몰 시각과 주야(낮밤) 길이가
표시되어 있었다. 그런데 하짓날의 일몰·일출 시각이 ‘인정 2각
(일출)’, ‘술초 1각(일몰)’이라고 분명히 적혀있지 않은가. 또한 주야간 길이에도
‘낮 61각’과 ‘밤 39각’이라 또렷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그것이 158년 후인 ‘경자년(1600년) 대통력’ 하짓날(5월
12일)에도 한 치의 오차 없이 적혀있었던 것이다.
1440년대에 중국과 아라비아를 제외하고 이 정도로 천문학이
발전된 나라는 조선밖에 없었다고 한다. 비록 명나라와의 관계 때문에 중국의 달력 체제를 따르기는 했다.
그러나 조선은 세종 때 계산한 서울 하늘의 관측 결과 즉 <칠정산>에 따라 달력을
수정해서 반포했던 것이다. 따라서 조선 연간에 발행된 ‘대통력’은 무늬만 중국 달력일 뿐, 세종의 애민정신과 당대 최고 수준의
천문학적 지식이 담겨있는 ‘조선의 독자달력’이라 할 수 있다.
‘경자년 대통력’ 등 조선시대 달력은 기본적인 날짜와 절기 등을 표시해놓았다.
그런데 얼핏 보아도 요즘 달력과 사뭇 다르다.
당대 사람들의 정신세계와 관련된 다양한 정보가 담겨있다. 즉
60갑자로 순환하는 일진과 그날의 기운과 운세를 지배하는 오행과 별자리,
12가지로 순환하는 운세가 적혀있다. 그중 24절기를
다시 3등분으로 세분화해서 각 절기의 특징을 설명해놓은 대목이 이채롭다. ‘경자년 대통력’의 ‘5월 세부 절기’ 설명글을 보자.
‘당랑생(螳螂生·버마제비가 나온다), 격시명(鵙始鳴·때까치가 운다), 반설무성(反舌無聲·개똥지빠귀가 울음을 멈춘다),
녹각해(鹿角解·사슴뿔이 빠진다), 조시명(蜩始鳴·매미가 운다),
반하생(半夏生·한약재인 반하가 난다)’ 또 해당 날짜의 길흉(吉凶)을 알려주고,
그에 따라 ‘해야 할 일(宜)’과 ‘해서는 안 될
일(不宜)’까지 설명한 부분도 흥미롭다. ‘5월 12일’ 자를 보면 이
날 ‘해야 좋은 일(의·宜)’은 ‘혼인 맺기(結婚姻), 친구 모임(會親友),
외출(出行), 입학, 문서작성(立券), 교역, 병 치료(療病), 집수리(修造)’ 등으로 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