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이토록 정밀한 문양을 어떻게 새겼을까. 지금도 수수께끼다. 고심을 거듭하던 연구자 가운데는 학술대회장에 대나무자와 참빗살로 개조한 컴퍼스를 들고 나온 이도 있었다. 대나무자로는 직선, 격자문 등을 새겨보았다. 참빗살 21가닥의 끝을 얇게 깎은 다치구 컴퍼스로는 간격이 0.33~0.55 ㎜에 불과한 동심원을 그려보았다. 그래, 백번 양보해서 2300~2200년 전 기술자가 그런 식으로 선과 동심원을 그렸다 치자. 다시 근본적인 의문점이 생긴다. 0.3 ㎜의 극초정밀 청동거울을 어떻게 주조했단 말인가. 이것이 바로 국보경을 두고 첨단과학으로도 풀 수 없는 불가사의라고 혀를 내둘렀던 이유였다. 2007~2008년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팀의 분석결과 ‘국보경의 실체’에 한발 다가가는 성과를 얻어냈다. 즉 국보경이 구리 61.68 %, 주석 32.25 %, 납 5.46 %를 함유한 것으로 분석됐다. 구리와 주석 비율만 따지면 65.7대 34.3이었다. 이게 의미심장하다. 고대 청동기의 합금비율을 기록한 중국의 <주례> ‘고공기’에 기록된 ‘금유육제(金有六齊)’ 내용을 해석하면 ‘구리 67대 주석 33’을 ‘합금의 황금비’라 한다. 국보경을 고대 청동거울의 황금비(67 대 33)와 견주면 단 1% 정도의 오차가 보일 뿐이다. 그렇다면 국보경은 “2300~2200년 전 청동기 기술이 최고 정점에 달할 때 제작된 유일무이한 작품”이 된다.
왜 그런 평가를 내렸을까. 청동거울의 경우 주석의 함유량이 높아질수록 색깔이 적색에서 백색으로 변한다. 즉 주석의 함유량이 10~20 %는 담황색, 20~30 %는 회백색, 30~40 %는 은백색을 띠게 된다. 은백색을 띠면 당연히 거울의 빛 반사성능은 좋아진다. 그래서 <주례> ‘고공기’가 이상적인 청동합금 비율을 ‘주석 33 %’라 한 것이다. 그럼 다른 청동거울도 주석 함유량을 30 % 이상으로 높이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중국이나 국내의 다른 청동거울은 주석의 함유량이 현저하게 낮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주석 함유량이 높아지면 색깔은 은백색으로 변하지만 22 %가 넘어가면 치명적인 단점이 생긴다. 인장강도(잡아당기는 힘에 견디는 저항력)가 급격히 떨어진다. 그 경우 거울은 쉽게 깨질 수밖에 없다. 기원전 3~2세기 국보 141호 청동거울을 만든 장인은 쉽게 깨지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황금비율로 알려진 구리·주석 비율(67 대 33)에 맞추려고 분투했다. 0.3~0.55 ㎜ 간격으로 그은 1만 3,000여 개의 선과 동심원을 천신만고 끝에 다 그려놓고도 아차! 하는 순간에 깨질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국보경은 청동기 제작기술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최상의 황금비율로 제작했다. 그 덕분에 색상과 반사율 면에서 최상의 조건을 갖춘 극초정밀의 예술품로 탄생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