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는 ‘K93호’라는 ‘K’자가 붙은 정체모를 목판 11장이 있었다. 그러던 1995년 전국의 고지도 목록 작성을 위해 박물관을 찾았던 한국역사문화지리학회 회원들은 그 목판 유물을 보고 깜짝 놀랐다. 존재하지 않을 것 같았던 고산자 김정호(1804?~1866?)의 <대동여지도> 목판이었다. 그 목판을 다른 곳도 아닌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서 발굴한 것이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우선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게 그 원죄를 물어야 할 것 같다. 나중에 보니 이 목판은 일제강점기에 작성한 유물목록에 ‘본관 9739(조선총독부 소장품)’로 기록되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총독부박물관은 어찌된 일인지 유물 자체에는 번호를 표시하지 않는 잘못을 저질렀다.

이 유물은 해방 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다른 박물관 소장품과 함께 부산-경주 등지로 피란했다가 1970년대에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유물에 번호표시가 없었으니 ‘돌아온 목판’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임시번호인 ‘K93’을 부여하고 목제품 수장고에 보관해놓았던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수십 년째 수장고에 있었던 대동여지도를 아무도 몰라봤단 말인가.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그렇게 알고 있는 이들이 있을 텐데, 대한민국 사람들이 철석같이 믿고 있던 이야기가 있었다.

“김정호가 전국 방방곡곡을 세 번이나 돌고, 백두산을 7~8번이나 오르내리며 대동여지도를 완성했다. 그러나 조선의 무지몽매한 지도자인 대원군(1820~1898)이 국가기밀누설죄로 김정호 부녀를 죽이고 대동여지도와 목판을 모두 불태워버렸다”

1993년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국어 읽기 교과서에까지 이런 내용이 들어있었다. 그러니 대원군이 불에 태웠다는 대동여지도가 다른 곳도 아닌 국립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었다고 상상조차 못했던 것이다. 그럼 어떻게 백두산 등정과 전국 답사설 그리고 대원군의 압박과 옥사설, 대동여지도와 목판 소각 등의 이야기가 나왔을까. 1925년 10월 8~9일 동아일보 1면에 실린 논설에서 처음 등장한다.

육당 최남선(1890~1957)의 글로 짐작되는 이 논설은 “김정호 선생은 팔도강산을 샅샅이 답사했고, 이를 위해 백두산만 7번이나 올라갔다”면서 “그러나 조선은 가장 정명(精明)하고 적확한 지도를 만든 이 국보적인 인물을 몰라준다”고 비판한다.

“(김정호가) ‘국가의 요새를 외국에 알릴 장본인’이라는 죄명 때문에 (중략) 대동여지도 목판은 몰수당하고 (중략) 지금 (조선의) 도처에 있는 ‘골고다(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곳)’는 그 독한 어금니로 또 한 번 이 의인을 씹어버렸다.”

요컨대 당대 조선과 조선인이 김정호를 ‘외국 스파이’로 의심하고 종국에는 대동여지도 목판을 압수하고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남선은 <별건곤> 1928년 5월호 글에서 “전하는 말에는 김정호가 4번인지, 5번인지 올랐다고 하더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조선총독부가 1934년 펴낸 <조선어독본>은 ‘얼씨구나!’하고 사실이 불분명한 이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각색한다. 김정호가 백두산에 8번 올랐고, 전국 방방곡곡을 세 차례나 돌며 대동여지도를 완성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흥선대원군이 국가기밀누설죄로 김정호와 그 딸을 옥에 가두었고 부녀는 옥중의 고생을 이기지 못한 채 죽고 말았다.

조선총독부가 출처불명의 뉴스를 역사적인 사실로 인정하고, 교육자료로 활용한 이유는 분명했다. 조선이 김정호 같은 뛰어난 인물에게 누명을 씌워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할 만큼 우매한 나라이므로 문명국(일본)의 통치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이 출처 모를 가짜뉴스가 1990년대 초중반까지 교과서에 실릴 만큼 정설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일까. 김정호는 대동여지도를 제작한 목적을 분명히 밝혔다. 그는 “지도는 나라가 어지러울 때는 적을 막고, 사나운 무리를 제거하며 평화로울 때는 나라를 경영하고 백성을 다스리는데 필요한 것(<대동여지도> 서문, ‘지도유설’)”이라 했다. 지도와 지리지의 중요성을 언급한 것이다.

그런데 이 <대동여지도>는 김정호 혼자만의 작품이 아니었다. 김정호가 살던 19세기 중엽 조선의 사정은 안팎으로 급급해졌다. 내부 정세는 혼란스러웠고 외세는 호시탐탐 조선을 노리고 있었다. 뜻있는 조선의 지식인·관료들은 나라 걱정에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그 중 무신이자 외교관이었던 신헌(1810~1884)은 김정호의 지도 제작을 적극 후원했다. 신헌은 “내가 비변사나 규장각 그리고 민간에 소장된 지도와 도서를 수집했고, 김정호에게 새로운 지도를 완성하도록 위촉했다(<금당초고>)”고 밝혔다. 또 실학자 최한기(1803~1877) 등도 김정호를 적극 도왔다. 이들의 기록을 종합해보면 어디에도 김정호의 백두산 등정은 물론이고 전국을 돌며 측량작업을 펼쳤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김정호의 업적이 퇴색되는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 실학자이자 과학사상가인 최한기는 “내 친구 김정호는 어릴 때부터 도지에 깊이 뜻을 두어 오랫동안 여러 가지 방법의 장단점을 찾아 살폈다(<청구도제>)”고 했다. 유재건(1793~1880)의 <이향견문록>은 “재주가 많은 김정호는 지리학을 특별히 좋아하여 (중략) <대동여지도>를 제작 (중략) 인쇄하여 세상에 내놓았다”면서 “상세하고 정밀한 것이 고금에 비할 바가 없다”고 극찬했다.

결국 김정호는 저명한 학자·관리 등의 후원 아래 각종 지도와 지리지에 실려 있는 측량자료를 비교 종합해서 각종 지도와 지리서를 제작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게 집단지성의 후원 아래 평생의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것이 1861년(철종 2) 완성한 <대동여지도>이다. <대동여지도>는 한국의 전통 지도 가운데 가장 우수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근대 지도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이 지도의 큰 장점은 실용성이라 할 수 있다. 한반도 전체를 22층(남북 120리 간격)으로 나누고 각 층에 해당되는 지역의 지도를 각 1권의 책으로 엮었다. 각 권의 책은 동서 80리 기준으로 펴고 접을 수 있게 만들어 사람들이 휴대하기에 편리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니 접힌 쪽을 다 펴면 세로 약 6.7m, 가로 약 3.8 m이 되는 대형 조선전도가 된다.

<대동여지도>는 백두산과 지리산을 잇는 산줄기를 자세하게 표시했고, 산줄기는 국토의 뼈대가 되고, 강줄기는 핏줄이 된다는 전통적인 자연관을 그대로 반영했다. 또 현대 지도의 범례에 해당하는 ‘지도표’라는 방법을 고안했다. 산과 산줄기, 하천, 바다와 섬 마을 등은 물론 읍·성지, 역참, 창고, 목장, 능침, 고현(古縣), 온천, 도로 등을 기호로 표시한 것. 특히 당대에는 쓰이지 않았던 옛 진과 보, 옛 산성 등의 위치도 기록하여 혹여 일어날지 모를 전란의 상황에 대비했다. 또 도로 위에 10리 간격으로 점을 찍어 지역 간의 거리를 쉽게 계산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필사본으로 전해져 대중적인 사용에 한계가 있던 이전 지도들과 달리 목판 인쇄본으로 대량으로 보급했다. 이전에는 국가기밀에 속하던 지리 지식을 대중에게 공유하도록 한 것은 김정호의 혁혁한 공이라 할 수 있다.

비록 김정호가 백두산을 8번 오르고, 전국을 3번 일주하지 않았어도 그토록 다양한 내용을 그토록 정교한 지도에 담았다는 사실이 더 놀랍지 않은가. 특히 예전에는 국가기밀로 치부되는 지리 지식을 공유하려 했다는 사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