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나눔

누구나 미술이 주는 혜택을

마음껏 누리길 바라며

 
종달새의 노래(쥘 브레통) (미국 시카고 미술관 소장)

나는 미술이 우리의 아픈 마음을 치유하고 행복을 전해준다고 믿는다. 누군가에게 미술은 한낱 한 장의 그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생명을 살린 구원자 같은 존재다. 무슨 소리지? 라고 들릴 수도 있지만 미술 작품이 살려낸 생명은 수도 없이 많다. 단지 자신의 삶에서 가장 부끄러운 치부를 드러내야 하기 때문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몇몇 용기 있는 유명인들은 힘들었던 때 미술이 자신을 구해주었다고 이야기 하곤 한다.
<고스트 버스터즈>,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등에서 주연을 맡은 할리우드 배우 빌 머레이(Bill Murray)가 대표적이다. 빌 머레이는 배우 지망생이던 시절 연이은 실패에 방황하고 삶을 포기하려 했다. 빌 머레이는 극단적 선택을 위해 미시건 호수로 향했다. 우연히 시카고 미술관(Art Institute of Chicago)에 들르게 되는데, 거기서 누가 그렸는지도 모르는 어느 한 농부 여인의 초상화를 보고 감동을 받아 마음을 다시 가다듬고 새 삶을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영화 시사회에서 한 적 있다.
미술은 개인은 물론이고 한 도시를 살린 일도 있다. 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군은 이탈리아 중북부의 작은 도시 산세폴크로(Sansepolcro)에 주둔하고 있던 나치를 공격하기 위해 영국의 토니 클라크 대위가 이끄는 포병대를 투입시켰다. 토니 클라크는 평소에도 책을 즐겨 일었다고 한다. 수천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던 산세폴크로에 발포 명령을 내린 후 오래 전 읽었던 한 문장이 그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이탈리아 산세폴크로에는 세계 최고의 그림이 있다”는 문장이었다.(올더스 헉슬리의 수필 ‘Along the Road’)
토니 클라크 대위는 그 작품을 본 적도 없고 무슨 작품인지도 몰랐지만, 세계 최고의 그림이 있다는 그 문장 때문에 곧바로 포격을 중단했다. 다행히 나치는 이미 떠난 후였고, 도시는 포탄 한 발도 맞지 않고 무사했다. 올더스 헉슬리가 기록한 르네상스 거장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그림, 산세폴크로 시청 벽에 그려진 <예수의 부활>이 시민들의 목숨을 구한 것이다.
예수의 부활(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이탈리아 산세폴크로 시립미술관 소장)

“Ars longa, Vita Brevis.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유명한 예술가가 한 말 같아 보이지만 사실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의 어록이다. Ars는 영어로 Art인데 예술이란 뜻 외에도 기술을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 원래 의미로는 ‘기술(의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가 올바른 해석이다. 시간이 흐르며 번역의 오류로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로 알려진 것이다. 하지만 히포크라테스가 살았던 고대 그리스 시대나 지금이나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의술은 예술과 같은 기술이다. 그리고 의술이 있기 전에 예술이 있었다.
인류 최초의 학문은 사냥술, 별자리 점성술 그리고 미술이었다. 원시시대부터 인류는 그림을 그렸다. 물론 지금과는 다른 의미였지만 미술은 그렇게 발전했다. 아기는 태어나서 혼자 돌아다니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벽에 낙서를 하기 시작한다. 손에 뭔가 쥐기만 하면 입으로 가져가거나 바닥이나 벽에 긁어 작품을 그린다.
그래서인가? 파블로 피카소는 ‘모든 어린이는 화가다’라는 말을 했다. 자라면서 재능을 잃은 것뿐이라고. 즉 모두가 그림을 그릴 필요도 없고 그릴 수도 없다. 인류 전체가 화가였다면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배고픔에 자멸했을 것이다. 미술은 종교만큼은 아닐지라도 그에 버금갈 정도로 우리의 삶 깊은 곳에 스며들어있고, 모든 기술과 학문에 걸쳐있다. 그래서 어쩌면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는 오역이 아닐 지도 모르겠다.
평범한 사람들이 미술학원을 다니면서 그림 그리는 취미를 가질 수도 있겠지만 쉽지만은 않다. 하루가 달리 변하는 세상에서 한가하게 무슨 미술이냐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말이다. 요즘처럼 너무나도 빠르게 진행되는 일상 중에 정지된 한 장면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기고, 추억을 떠올리며 미래를 상상해 볼 수 있는 건 역시 자연과 미술 작품 앞에서 뿐이다.
음악도, 문학도, 영화도, 스포츠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함께 흘러간다. 하지만 미술은 시간이 거꾸로 흐르더라도 한 장면에 멈춰서 있다. 미술은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듣거나 보기 전까지는 화가의 의도와 다르더라도 보는 사람의 해석으로 그 내용이 정해진다. 단 30초 만이라도 작품 구석구석을 보며 떠오르는 생각을 퍼즐 맞추든 맞춰 가면, 어느덧 그 작품은 나의 깊숙한 어딘가에서 내 마음을 쓰다듬거나 내면을 할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미술을 통해 나 자신의 원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방법은 간단하다. 요즘은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책이나 미술관에서 보는 그림만으로도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 미술이 주는 치유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나는 미술이 전해주는 행복과 치유의 힘을 믿는다. 그래서 화가로서 그림을 그리기도 하지만 지난 십여 년간 블로그와 집필, 강의 등을 통해 미술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미술을 통해 마음을 치유하고, 행복해 지는 ‘인생 작품’을 만나길 바라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자신만의 작품을 찾아 미술이 주는 혜택을 마음껏 누리며 행복해 지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