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속 과학읽기

백성을 위해 천기를 누설한

세종대왕의 해시계 ‘앙부일구’

1859년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궁전 북쪽 끝에 설치한 공중시계탑이 바로 ‘빅벤(Big Ben)’이다.
빅벤이란 명칭은 당시 공사를 담당한 벤저민 홀(1802~1867)의 ‘거구’를 빗대 이름 붙인 것이라 한다.

빅벤보다 415년 빠른 조선의 공중시계

에드문드 베켓(1816~1905)이 설계 당시 4만 파운드를 들여 주조한 대형 탑시계 빅벤

‘빅벤’ 보다 무려 415년 빠른 1434년에 공중시계를 만든 분이 있다. 바로 세종대왕(재위 1418~1450)이다. 어떤 공중시계일까. <세종실록> 1434년(세종 16년) 10월 2일자를 보면 “해시계인 앙부일구를 만들어 종로 혜정교(종로 1가 광화문 우체국 부근)와 종묘 앞에 설치했다.”는 소식을 알렸다.
“밤에는 물시계로 시각을 측정하는데 낮에는 알기 어렵다. 그래서 구리로 가마솥과 같고, 지름에는 둥근 톱니를 설치했다…12지신을 그린 것은 어리석은 백성을 위한 것이요…해에 비쳐 시각을 알고…길 옆에 설치한 것은 보는 사람이 모이기 때문이다. 하나는 혜정교 옆에, 다른 하나는 종묘 남쪽 거리에 놓았다.”
앙부일구는 ‘하늘을 우러러 보는(·앙) 가마솥(·부) 모양에 비치는 해 그림자(日晷·일구)로 때를 아는 시계’라는 뜻이다.

“어리석은 백성을 위해…”

세종실록에는 종로 혜정교와 종묘 앞에 앙부일구를 설치했다는 소식이 기록되어 있다.

국조역상고에는 앙부일구를 활용해 한양의 북극고도를 측정한 기록이 있다.

실록 기사를 곱씹어보면 세종대왕은 구구절절 ‘애민정신의 끝판왕’임을 알 수 있다. ‘어리석은 백성을 위해…12지신 그림으로 시각을 표시한 앙부일구를 만들어 길가(혜정교와 종묘 거리)에 설치했다’는 대목을 보라. 실록 기사 중에 ‘어리석은 백성을 위해(爲愚氓)’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표현이 아닌가. “어리석은 백성들(愚民)을 딱하게 여겨 훈민정음을 창제했다.”는 세종대왕의 말씀(1446년 9월 29일)이 떠오른다.
그러나 앙부일구를 대로변에 설치한 1437년은 한글이 창제되기 9년 전의 일이다. 세종은 글 모르는 백성들을 위해 시각을 글자(한자)가 아니라 12지신의 동물그림으로 표현했다. 자()·축()·인()·묘() 대신 쥐와 소, 호랑이, 토끼 등의 동물 그림으로 시각을 표현했다. 삼척동자도 알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대로변에 설치함으로써 지나는 백성들이 쉽게 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 또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원래 ‘천문 기상의 관측’은 군주의 고유 권한인 ‘천기(天機)’에 속했다. 왕()이라는 상형문자를 보라. 하늘()과 땅()을 연결해주는 유일한 존재()가 바로 임금이었다.
<서경> ‘요전편’은 ‘임금만이 하늘, 땅과 소통한 뒤에 백성들에게 생활에 필요한 시간과 절기를 나누어 주는 임무를 맡고 있다’고 했다. 그것을 ‘관상수시(觀象授時·하늘을 관찰하여 백성에게 절기와 시간을 알림)’라 했다. 거꾸로 말하면 천기는 군주의 몫이니 함부로 누설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세종이 누구인가. 세종은 ‘천기’를 독점하지 않고, 백성들에게 ‘누설’하고 말았다. 예로부터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여긴다(民以食爲天)”(<사기> ‘열전·역이기전’)고 했다. 세종은 바로 농사를 생업으로 하는 백성들이 시간과 절기를 스스로 알고 대비할 수 있도록 ‘베풀어 준’ 것이다. 세종은 물시계인 자격루를 제작하여 국가의 표준 시계로 삼은 다음 백성들이 쉽게 시간 및 절기를 알 수 있는 공중 해시계(앙부일구)를 발명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천기누설’로 끝나지 않고, ‘천기공유’로 만든 이가 바로 세종이었던 것이다.

앙부일구를 둥글게 만든 이유는?

한 가지 궁금증이 든다. ‘앙부일구’라는 이름을 보라. ‘솥뚜껑을 뒤집어놓은 곡면 모양으로 만들어 하늘을 바라보게 했다’는 뜻에서 ‘앙부’라는 이름이 붙었다. 왜 그렇게 만들었을까.
해시계는 예부터 전 세계적으로 다양하게 제작됐다. 하지만 계절과 시간에 따라 해가 뜨는 높이와 방향이 바뀐다. 따라서 평면으로 해시계를 만들면 해의 그림자가 달라지고, 시계의 숫자판이 불규칙해지며 사이 간격도 일정치 않게 된다. 세종 시대의 과학자들은 바로 이런 단점을 보완하려 했다. 숫자판을 오목하게 만든 앙부일구를 발명해낸 것이다.
어떤 원리일까. 앙부일구는 오목한 구형 안쪽에 설치된 막대에 해 그림자가 생겼을 때 그 그림자의 위치로 시각을 측정한다. 해 그림자를 만드는 끝이 뾰족한 막대는 ‘영침(影針)’이다. 영침(시침)의 끝은 구의 중심이 되며, 막대의 축을 북극에 일치시켰다. 영침 둘레에는 시각을 가리키는 선(시각선)이 세로로 그려져 있다. 그런데 세종은 ‘어리석은 백성들이 시각을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그 시각을 12지(十二支)의 동물인형으로 표시했다. 또 시각선과 직각으로 13개의 절기선을 새겨 넣었다. 이 절기선 양쪽 가장자리 윗면에는 24절기가 표시되어 있다.
해는 여름이면 높이 뜨지만 겨울이 되면 비스듬히 떠서 방 안 깊숙이 비춘다. 당연히 그림자도 여름이면 짧아지고 겨울에는 길게 늘어지는 것이다. 이것을 이용한 것이 13줄이다. 그 중 가장 바깥 줄에는 시침의 그림자가 가장 길게 되는 곳에 ‘동지(冬至)’라는 표시가 있다. 제일 안쪽 줄은 시침의 그림자가 가장 짧게 되는 곳에 ‘하지(夏至)’라고 쓰여 있다.
나머지는 소한, 대한, 입춘, 우수로 이어지는 24절기를 나타낸 것이다. 즉 계절의 변화에 따른 24절기가 그 변화에 따라 해의 기울기가 달라져 시침의 그림자가 변하는 모습을 13줄로 나타내고 있다.
앙부일구(보물 제 2159호)

오늘날의 만능 시계

이렇듯 앙부일구는 천구상에서 일정한 주기를 갖고 회전하는 태양의 운행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기구였다. 따라서 해 그림자가 드리워진 절기선과 시각선의 눈금을 읽으면 별도의 계산 없이 그때의 시각과 절기를 곧바로 파악할 수 있는 간편한 기구라 할 수 있다. 서울의 위도를 정확하게 측정하고 영침을 서울의 북극고도에 맞추어 설치했다는 것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서울을 기준으로 한 국가 표준 시계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세종시대 과학자들은 영침의 해 그림자를 통해 시간과 그 때의 절기를 한눈에 알 수 있도록 앙부일구를 설계했다.
윤용현 국립중앙과학관 전시총괄과장은 “앙부일구는 오늘날의 만능 시계와 같은 역할을 한 것”이라며, “앙부일구는 고유의 정밀 시계 발명품이자 독창적인 과학 문화재라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앙부일구를 만든 과학자들은 이순지(?~1465), 장영실(1390~?), 이천(1376~1451), 김조(?~1455) 등이었다.

휴대용으로 발전

9월 25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리는 ‘나라 밖 문화재의 여정’ 특별전에 ‘아주 특별한 앙부일구’ 1점이 전시되어 있다. 지난 2020년 문화재청 산하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미국에서 열린 경매에서 매입·환수한 앙부일구이다. 이 앙부일구가 어떻게 해서 미국으로 유출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의 골동품상에서 한 개인이 구입해 소장하고 있다가 경매시장에 내놓은 것이었다.
휴대용 앙부일구(문화재청 제공)

물론 이 앙부일구는 세종 연간에 제작된 것은 아니다. 1713년(숙종 39년)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보는 근거가 있다. 환수된 앙부일구에는 한양의 북극고도를 측정한 값인 ‘북극고 37도 39분 15초(北極高三十七道三十九分一十五秒)’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그런데 이 명문은 “1713년(숙종 39년) 한양의 종로에서 북극고도를 측정하여 37도 39분 15초의 값을 얻었다.”는 <국조역상고>(1796년)의 기록과 정확히 일치한다. 환수된 앙부일구는 서울의 위도에서 정확한 시간을 읽을 수 있도록 제작된 것이다. 현대 시각체계와 비교해도 거의 오차가 나지 않고 절기와 방위, 일몰시간, 방향 등을 알 수 있는 체계적이고 정밀한 과학기기라 할 수 있다. 구입·환수된 앙부일구는 정밀한 주조 및 섬세한 은입사 기법, 다리의 용과 거북머리 등의 뛰어난 장식요소 등을 두루 갖추고 있다. 고도로 숙련된 장인이 만든 예술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이후 앙부일구는 궁궐과 관공서, 일반 사대부가에 이르기까지 널리 보급됐다. 하지만 세종 때 제작된 앙부일구는 남아 있지 않다. 현존하는 앙부일구 7점은 모두 조선 후기에 제작된 것이다. 또한 세종 애민정신의 상징인 ‘12지신 동물 그림’이 새겨진 앙부일구도 현존하지 않는다. 19세기 후반이 되면 휴대용 앙부일구로 발전한다. 그렇지만 어리석은 백성들을 위해 천기를 누설하고 공유한 세종의 애민정신은 그 어떤 앙부일구에도 아로 새겨져 있다.
국립고궁박물관 특별전 ‘나라 밖 문화재의 여정’에서 휴대용 해시계 ‘일영원구’를 만나볼 수 있다.
전시기간 : 2022.07.07. ~ 2022.09.25.
장소 : 국립고궁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
관람시간 : 10시~18시(입장마감 : 1시간 전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