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속 과학읽기

고대 원형극장에 깃든 음향의 신비

튀르키예 안탈리아

튀르키예 남부의 안탈리아는 지중해가 낳은 휴양의 땅이다.
푸른 해변은 이슬람 첨탑과 성벽이 어우러진 고대 도시의 흔적이 남아 있다.

오페라 음향이 생생한 아스펜도스 극장

아스펜도스의 원형극장

안탈리아의 폭포

안탈리아(Antalya)는 휴양 이전에 고대유적 투어의 기점으로 의미가 깊다. 동쪽으로 향하면 아스펜도스(Aspendos), 시데(Side)로 이어지고 서쪽 리키아(Lycia) 땅으로 발길을 옮기면 뮈라(Myra), 케코바(Kekova) 등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스펜도스는 1,800년 세월의 원형극장이 옛 모습 그대로 고스란히 남은 곳이다. 한 때 실크로드를 오가던 대상들의 숙소로 이용됐던 원형극장에서는 오페라, 발레축제가 열린다. 마이크, 스피커 등 특별한 음향시설을 가미하지 않은 채 천년 유적 안에서 감상하는 오페라는 매혹적이다.
개방된 돌덩이의 반원형극장에서 ‘날 것’의 공연이 실감나게 펼쳐지는 것은 오랜 수수께끼였다. 미국 조지아대 공대 연구팀이 고대유적에 숨겨진 음향과학의 비밀을 분석했고 원형극장의 계단들이 맨질맨질한 석회암이라는 사실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석회암은 고주파 등 주사운드를 반사해 증폭시키고, 객석의 웅성거림 등 특정 저주파를 흡수해 필터링하는 성질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맨 뒷자리까지 배우의 육성이 전해지는 비밀의 열쇠는 무대가 아닌 객석에 있었던 셈이다. 여기에 계단식 반원형극장이 형성한 정밀한 음향 반사각은 원형극장을 오페라 무대로 완성시킨 단초가 됐다.
아스펜도스 원형극장은 AD 2세기경 로마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위해 건립됐으며, 1만 5,000명 규모의 공연장은 세계적으로도 잘 보존된 고대극장으로 인정받고 있다. 매년 6~7월 밤에 열리는 아스펜도스 국제 오페라 발레 페스티벌 역시 월드클래스의 반열에 올라 있다.

휴양과 역사가 깃든 구도심 ‘칼레이치’

안탈리아 구도심 칼레이치

안탈리아의 콘야얄트 해변

안탈리아는 본래 ‘여러 종족의 땅’이라는 의미를 지닌 ‘팜필리아’의 도시였다. 한때 알렉산더 대왕의 영토였다가 로마에 의해 페르가몬 왕국에 넘겨지기도 했다. 안탈리아 구도심인 칼레이치(Kaleici)에는 도시의 과거가 낱낱이 담겨 있다. 칼레이치 산책은 항구를 둘러싼 4.5km의 성벽 길을 향해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문에 들어서는 것으로 시작된다. 하드리아누스의 문은 AD 130년에 로마 황제인 하드리아누스의 방문을 기념해 시민들이 건립했는데 아치형 장식이 도드라진다.
십자군 전쟁 때의 중간기지, 오스만제국과 몽고 지배를 거친 지중해 최대의 포구 도시는 소담스런 가옥과 이슬람, 로마의 혼재된 유적들을 간직한 채 성벽 안에 웅크려 있다. 칼레이치의 이정표인 ‘이블리 미나레’와 ‘케식 미나레’는 홈이 파이고 상단부가 잘려나간 생채기가 아련하다. 이 첨탑의 사원들은 비잔틴 시대 때는 교회로 이용됐다.
칼레이치의 좁은 골목을 따라 내려가면 흰 돛단배들이 정박해 있는 포구로 연결된다. 돌무쉬(Dolmus)라 불리는 미니버스를 타거나 지중해를 요트로 돌아보는 것은 안탈리아 여행의 백미다. 포구에서 멀어질수록 드러나는 성벽의 자태는 아름답고 절벽 위에 매달린 숙소들과 폭포의 모습도 선명하다. 안탈리아를 대변하는 콘야얄트 해변은 유럽 각지에서 몰려온 휴양객들로 늘 북적거린다. 토로스 산맥과 나란히 달리는 해안 곳곳에는 수백 개의 호텔과 리조트들이 은밀한 휴식을 완성시킨다.

해변가에 늘어선 로마시대 유적들

이스파르타의 장미

아스펜도스, 시데 등 안탈리아 동쪽 마을들은 노천박물관에 들어선 듯 찬란하다. 시데(Side)는 ‘석류’라는 속뜻처럼 들어설수록 베일을 벗는다. 코린트식의 기둥들은 입구부터 나란히 도열해 고대도시에 왔음을 실감하게 한다. 유적이 늘어선 돌길을 걷다 보면 고대 원형극장과 아고라가 나오고 푸른색 비치 뒤로 신전이 다시 나타나는 장면이 반복된다.
기원전 7세기 이오니아의 식민지였던 시데는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와 로마의 안토니우스가 함께 일몰을 바라봤다는 전설이 깃든 땅이다. 해변가에는 아폴론 신전이 덩그러니 놓여 있는데 신전 앞에서 조우하는 시데의 일몰은 클레오파트라의 전설까지 덧씌워져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서쪽 리키아(Lycia)로 향하는 길은 지중해의 숨겨진 보석들과 알현하는 여정이다. 한적한 어촌 풍경을 간직한 위츠아즈는 바닷 속에 수몰된 유적인 케코바(Kekova)를 품은 어촌이다. 옛 리키아 연합에 부속됐던 시메나의 유적들은 코발트블루의 바닷 속에서 고요히 숨 쉬고 있다. 로마 시대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칼레성은 성 아래 붉은 펜션들과 어우러져 엽서같은 풍광을 만들어낸다. 석굴 무덤이 인상적인 뮈라(Myra)는 산타클로스의 유례가 담긴 성 니콜라스의 유적으로 생경한 사연들을 쏟아낸다.
안탈리아 북쪽 이스파르타(Isparta)는 향긋한 장미향으로 기억되는 도시다. 전 세계 장미수와 장미오일의 60% 가량을 생산하는 이 도시는 장미가 활짝 피는 5, 6월이면 도시 전체가 장미향에 휩싸인다. 장미 소스가 곁들여진 터키식 만두 괴즐레메를 맛보는 독특한 경험도 선사한다. 산 정상 위에 들어선 외딴 고대도시 사갈로소스는 지중해의 해변과는 또 색다른 풍경들로 이방인을 사로잡는다.


6월 24일부터 변경된 터키의 국가명 ‘튀르키예(Turkiye)’로 표기함 (국립국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