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발견

젊은 피로 치매 치료

노화는 피해야만 하는 것일까

 ‌영화 ‘바토리’에서 주인공 바토리 에르제베트 역할을 맡은 안나 프릴(IMDb 제공)

 ‌‌헝가리 바토리 에르제베트 남작부인의 초상화(위키피디아 제공)‌

인류가 지구에 등장한 이후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영원한 젊음’을 갈망했다. 중국 진시황제가 많은 사람에게 ‘불로초’를 찾아 나서도록 한 것도 그 때문이다. 서양에서도 근대 시민사회가 되기 전 계급사회였던 시기에 귀족들 중에서도 지나치게 젊음을 갈망하다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경우도 있었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연쇄살인마 헝가리 ‘바토리 에르제베트(1560~1614)’ 남작부인이 대표적이다. 젊은 사람의 피가 미모와 청춘을 유지시켜 줄 것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영지 주변에 사는 소녀들을 납치해 죽인 뒤, 피를 받아 마시거나 욕조에 피를 모아 목욕을 했다고 한다. 귀족 계급 소녀들까지 납치했다가 헝가리 황실 근위대에 꼬리를 잡혀 종신 금고형을 선고받고, 결국 감옥에서 미쳐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에르제베트가 체포되기 전까지 죽인 소녀들의 숫자만 1,568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브람 스토커의 소설 ‘드라큘라’의 모델은 15세기 왈라키아 공국 영주였던 블라드 체페슈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현대의 수많은 흡혈귀 전설의 모델은 바로 에르제베트이다.
에르제베트나 드라큘라처럼 피를 마시거나 목욕을 하는 것이 젊음 유지에 효과가 없다는 점은 이미 과학적으로 밝혀졌다. 그렇지만 건강한 피나 체액이 인체에 미치는 의학적 효과에 대한 연구는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실제로 젊은 피나 체액 주입이 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1950년대 미국 코넬대 클라이브 맥케이 교수팀은 젊은 쥐와 늙은 쥐의 옆구리에 상처를 낸 뒤 피가 섞이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젊은 쥐의 피와 섞인 늙은 쥐의 연골은 실험 전보다 젊어진 것이 확인됐다. 당시에는 그저 엽기적인 실험으로 취급됐을 뿐 정확한 이유에 대해는 밝혀내지 못했다. 50년 정도가 지난 2000년대 미국 스탠퍼드대 의대 연구진은 비슷한 실험을 진행해 똑같은 결과를 얻었고, 젊은 쥐의 혈액 속에는 노화된 줄기세포를 다시 활성화 시키는 ‘GDF11’이라는 단백질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2014년 미국 하버드대 연구팀도 젊은 쥐의 혈액을 늙은 쥐에게 수혈한 결과 근육량이 증가하고 뇌가 젊어지는 ‘안티 에이징’ 효과를 확인했다는 연구 결과를 과학저널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2017년 스탠퍼드대 의대 연구팀은 인간 신생아의 제대혈에서 추출한 혈장을 늙은 생쥐에게 주입한 결과 기억력과 판단력 같은 뇌 기능이 전반적으로 향상됐다는 연구 결과를 ‘네이처’에 게재했다. 이들은 지난해 12월에도 운동을 많이 한 생쥐의 혈액을 운동이 부족한, 이른바 게으른 생쥐에게 주입하면 운동을 많이 한 생쥐와 똑같은 신체적 효과를 갖게 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네이처에 연구 결과를 공개하기도 했다.
미드 ‘실리콘 밸리’의 한 장면(IMDb 제공)

2017년, 2021년 젊은 피의 안티에이징 연구를 수행했던 스탠퍼드대 의대 토니 와이스 코리 교수(신경학)는 스탠퍼드대 신경과학연구소, 신경외과학과, 화학과, 노화 생물학연구센터, 팔로알토 보훈연구소, 독일 자를란트대 의대 임상 생물정보학과, 헬름홀츠 약리학 연구소, 스웨덴 예테보리대 신경과학 및 생리학연구소, 살그렌스카대학병원 임상신경화학교실, 영국 런던대(UCL) 신경퇴행성질환연구소, 치매연구소 공동 연구진과 함께 어린 생쥐의 뇌척수액을 늙은 생쥐에게 투여하면 뇌 기능 전반이 회복된다고 밝혔다. 이 같은 연구 결과는 과학저널 ‘네이처’ 5월 12일 자에 게재되었다.
노화는 신체적 기능뿐만 아니라 인지기능까지 떨어뜨려 치매나 퇴행성 신경질환의 발병 위험을 높인다. 뇌척수액은 뇌 세포에 영양소, 신호전달 물질, 성장인자를 제공해 혈액 속 혈장과 같은 역할을 신경계에서 한다. 연구팀은 젊은 혈장이 항노화 기능을 갖고 있다는 기존 연구 결과를 근거로 뇌척수액이 뇌의 노화 과정에서 비슷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이에 연구팀은 생후 10주가 지난 어린 생쥐의 뇌척수액을 생후 18개월 된 늙은 생쥐의 뇌에 주입한 뒤 인지기능 변화와 신경회로 활성 정도를 관찰했다.
그 결과 젊은 생쥐의 뇌척수액은 희소돌기아교세포를 만드는 전구세포 활동을 증가시키는 것이 관찰됐다. 이 전구세포는 나중에 희소돌기아교세포가 돼 기억과 학습을 관장하는 해마의 신경세포를 보호한다. 나이가 들면 희소돌기아교세포 전구세포가 줄어들면서 해마 보호 기능이 약화돼 기억력 저하와 인지기능 약화 같은 퇴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또 뇌척수액 속 ‘Fgf17’이라는 성장인자가 인지기능의 핵심 요소이자 잠재적 회춘 인자라는 사실을 연구팀은 밝혀냈다. 나이 든 생쥐의 척수액 속 Fgf17 성분은 젊은 생쥐보다 현저하게 낮은 것이 관찰됐다. 젊은 뇌척수액을 주입하면 Fgf17도 증가하면서 늙은 쥐의 기억력이 향상되고 손상된 뇌세포 회복 속도도 빨라지는 것이 확인됐다.
토니 와이스 코리 교수(미국 스탠포드대 의대 제공)

토니 와이스 코리 교수는 “뇌는 나이가 들어도 바뀔 수 있는 여지가 있고 기능 개선 방법도 있다”며 “이번 연구는 젊은 생쥐의 뇌척수액에 포함된 성장인자가 늙은 생쥐의 신경세포 기능을 복원시킬 수 있는 요소 중 하나라는 것을 제시 했다는데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건강한 체액이 인체에 미치는 과학적 효과에 대해서는 명확한 결론이 날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건강한 체액을 이용한 난치성 질병이나 퇴행성 뇌질환을 치료하는 방법도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그렇지만 한 가지 우려스러운 점은 늙음은 ‘피해야 할 것’, 젊음은 ‘되찾아야 할 것’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이다. 인간에게 나타나는 자연현상 중 하나인 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세대 간 갈등, 계층 간 갈등까지 일으킬 수 있는 잠재적 위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