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나눔

영화 「일일시호일」

매일이 좋은 날이길 바란다면
현재에 집중할 것

「일일시호일」은 키키 키린의 마지막 유작이라는 이유만으로 개봉 직후 관람한 영화다. 같은 영화라도 감상자의 관심도에 따라 집중하는 포인트가 다르기 마련이다. 나는 키키 키린의 얼굴과 몸짓 하나하나에 집중했다. 그녀의 새로운 얼굴을 더 이상 만나볼 수 없다는 슬픔에 자세히도 들여다봤다. 키키 키린은 주인공 ‘노리코(쿠로키 하루)’의 다도선생 ‘다케타’로 분해 늘 그래왔듯 멘토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냈다.
키키 키린에 대한 애정표현은 이쯤에서 끝내고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주인공 노리코는 자신이 좋아하고 바라는 삶이 무엇인지 모른 채 살아가던 중 엄마의 권유에 떠밀려 다도를 배우게 된다. 영화는 노리코가 다도를 배우기 시작한 스무 살부터 25년이 흐를 때까지의 여정을 그린다. 이 긴 시간 동안 노리코는 차()를 통해 인생을 개척해나간다. 엉겁결에 배우기 시작한 것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게 된 셈이다.
「일일시호일」을 보며 가장 의아했던 점은 노리코가 무려 25년 이상 다도를 배워온 것이다. ‘1년 정도 하다 그만두겠지’라는 예상과는 달리 그녀의 차에 대한 열정은 상당했다. 습득의 속도는 느리고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꾸준히 배워가면서 성장한 노리코의 삶은 보는 것만으로도 자극이 되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노리코의 삶이 허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일시호일」은 초판 이후 17년 동안 40만 부 이상 판매되며 ‘인생 에세이’로 불리는 일본 스테디셀러 『매일매일 좋은 날(알에이치코리아, 2019)』을 원작으로 탄생된 영화로, 저자 모리시타 노리코의 삶을 투영한다. 모리시타 노리코는 40년 이상 다도를 배웠고 2010년에는 오모테센케 교수 자격까지 얻었다.
다도에 입문하기 전 노리코는 사촌 ‘마치코(타베 미카코)’의 성격과 삶을 부러워했다. 그러나 다도를 통해 자신에게 집중하는 법을 배움으로써 주체적인 인물이 된다. 더 이상 타인을 부러워하지 않고 자족하며 살아가는 노리코의 삶은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어줄 것이다. 영화 초반에 노리코가 자백한 덜렁댐이 고쳐진 것 역시 다도 효과이다. 이렇듯 영화는 다도정신을 통해 변화한 주인공을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다도
이처럼 「일일시호일」은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고민에 빠진 모든 이들에게 위로와 현답을 전한다. 제목의 뜻처럼 ‘날마다 좋을 수 있도록 매 순간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이는 곧 ‘자신에게 집중하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사회적 편견과 주위 시선에 자신을 끼워 맞추거나 타인의 삶을 부러워하지 말고 자신에게 맞는 삶을 살아야 행복할 수 있다.
혹시 이 글만 읽고 철학적이거나 지루한 영화로 짐작했다면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 밝은 분위기와 위트 있는 대사, 감각적인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오모리 타츠시 감독은 ‘현재에 집중하라’는 메시지를 관객 참여형으로 표현해냈다. 가령 노리코가 차갑고 뜨거운 물을 떨어뜨리는 장면에서는 온도에 따라 달라지는 ‘소리에 집중’하도록 했고 문자를 통해 실체를 연상케 하는 장면에서는 감상자를 온전히 이미지에 집중할 수 있도록 오브제를 화면 가득 담아냈다. 이 과정을 통해 다도정신의 일면을 잠깐이나마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에 정답은 없다. 그러므로 답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잘 알아야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자신을 가장 모른다. 눈앞에 펼쳐진 타자를 보느라 정작 스스로를 들여다볼 줄 모른다. 여기에 일침을 가하는 「일일시호일」은 지나고 나면 되돌릴 수 없는 ‘지금의 가치’를 일깨워준다.
비슷한 일상이 반복되고 같은 절기와 계절이 도래해도 매 순간은 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금을 최대한 충실히 보내야 한다. 극중 등장하는 노리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처럼 인생은 예측 불가한 요소들로 점철돼 있다. 그러니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앞선 고민 대신 현재에 에너지를 투자하는 것이 좋다. ‘있을 때 잘 하라’는 격언처럼 말이다.
새롭거나 자극적인 에피소드가 없어도 「일일시호일」이 묵직한 감동을 주는 이유는 나와 주변의 삶을 옮긴 듯한 공감의 힘 때문은 아닐까. 나도 이 영화를 통해 스무 살의 나와 지금까지의 삶을 성찰할 수 있었다. 불안정한 현재,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집중할 수 있는 대상을 찾아 실천에 옮길 것을 추천한다. 단시간에 드라마틱한 성과를 기대하긴 어렵지만 지금의 작은 행동들이 쌓여 지금보다 멋진 미래를 그려볼 순 있다.
영화가 마음에 들었다면 원작 에세이를 읽어볼 것도 권한다. 좋은 문장들이 많기 때문이다. 에세이 속 인상 깊었던 글귀와 함께 이 글을 마무리한다.
학교도 다도도
인간의 성장을 목표로 삼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 큰 차이가 있다.
학교는 언제나 ‘타인’과 비교하고,
다도는 ‘어제까지의 자신’과
비교한다는 점이다.

–「매일매일 좋은 날, 26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