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나눔

우주를 항해하는 음악 이야기,

보이저 2호의 동판 레코드와
나의 음악 인생

음악이란 무엇인가?

만일 인류가 지금까지 만들어낸 이 문화를 외계의 지적 생명체에게 설명한다면 우리는 어떤 음악을 골라야 할까? 실제로 이런 상상력과 호기심으로 출발해 선정한 모범 답안이 있다. 1977년 9월, 미 항공 우주국 나사(NASA)는 우주 탐사선 ‘보이저’를 쏘아 올리면서, 그 안에 여러 언어와 자연의 소리들을 담은 동판 레코드를 만들어 실었다. 외계의 지적 생명체, 이른바 외계인이 있다는 가정 아래 외계인이 만지기만 하면 저절로 재생되도록 만든 것이다. 이 레코드에는 약 한 시간 반 정도 분량의 음악도 엄선되어 함께 실렸다. 당시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던 과학자 칼 세이건은, 저서 <코스모스>에서 이 동판에 수록되어있는 음악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동판 레코드는 많은 문화권의 훌륭한 음악을 한 시간 반 분량 수록하고 있다. 그 가운데에는 우주의 쓸쓸함에 관한 우리들의 기분을 표현하고 있는 것, 고독을 해소하고 싶어 하는 희망, 우주의 그 밖의 생물들과 접촉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우리들의 희망을 나타내는 음악이 포함되어 있다.”
음악의 본질에 대한 설명은 아니지만, 우리는 적어도 칼 세이건의 언급에서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다. 보이저 동판 레코드에 실린 음악은 소리를 통해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는 점이다. 감정의 전달을 통해 동질감을 확보하고 뒤이어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구체화하는 과정 그 자체가 음악이 예술이 되고 문화의 일부가 되는 과정이며, 그것이 바로 인류가 지적 생명체임을 증명하는 행위이다.
동판 레코드에 수록된 음악을 살펴보자. 한 시간 반 동안 인류를 대표하는 음악의 선두 주자는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2번 1악장이다. 이어 베토벤, 모차르트, 스트라빈스키 등 클래식이라 불리는 고전 음악들과 루이 암스트롱을 비롯한 재즈, 척 베리의 초기 로큰롤, 블라인드 윌리 존슨의 블루스 등 다양한 시대와 장르의 음악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다시 베토벤의 현악 사중주로 끝이 난다.
이제 목록 중 나머지를 살펴본다. 각 대륙에서 골고루 고른 민요 독주와 합창, 그리고 전통 악기 연주들이다. 인도네시아 자바 섬, 세네갈, 오스트레일리아, 불가리아, 북미 원주민, 중국 등 우리가 전통 음악이나 월드뮤직 등의 이름으로 불렀던 지역 음악들이다. 글쓴이는 독자들과 함께 이런 지역 음악에 주목하려 한다. 고전 음악이나 재즈, 대중음악과 비교해보면 대부분 여전히 낯선 음악이다. 1977년 9월과 사십여년이라는 시차 때문에 생긴 괴리가 아니라, 서양 음악의 역사를 교육받은 우리의 관점과 이해 방식을 적용해 볼 때 여전히 낯설다는 이야기이다. 이른바 월드뮤직이라는 이름으로 90년대 중후반 우리나라에 상륙한 세계 각지의 전통음악과 대중음악 그리고 그 두 가지가 섞인 음악 형태들과 같은 것들이다.
월드뮤직은 귀로 읽을 수 있는 문화가 되기도 한다. 그 문화 속에는 언어와 역사, 관습, 지리, 기후 등이 담겨 있기도 하다. 또한 다양한 문화를 담고 있다는 측면에서 닮은꼴들이 많다. 예를 들어 건축, 영화, 와인 등 일종의 종합 예술이기도 하지만 세계 각지에서 전해 내려오는 월드뮤직을 통해 우리는 다양한 문화를 읽어낼 수도 있다. 월드뮤직도 일종의 종합 예술인 셈이자 인문학의 결정체 중 하나이다. 또한 우리가 미처 몰랐던 문화의 증거자료이기도 하다.
레코드
1977년 우주로 날아간 보이저 동판은 단지 소리를 담은 과학 기술의 증거일 뿐만 아니라, 인류가 만든 아름다운 소리의 문화이자 그 문화의 다양성을 엄선한 것이다. 물론 2021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그 동판 속에 담긴 세계 각지의 음악을 다시 들어도 여전히 낯설게 느낄 수는 있다. 만일 먼 우주에서 살고 있을지 모를 외계의 지적 생명체가 어느 날 우리에게 다가와 동판을 내밀며 인디아 전통 음악 라가에 대해 설명을 요구한다면, 우리는 인류 문화의 유산이자 감정 전달의 효율적인 형태인 음악에 대해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현재 지구에서 살고 있는 인류의 구성원인 우리가 인류의 공통 정서를 소리로 표현한 세계 각지의 음악을 지금까지도 낯설게 느낄 수는 없는 일이다.
아무것도 몰랐던 까까머리 중학생 때 만났던 칼 세이건의 저서 <코스모스>에서 만난 이 동판과 수록곡들은 어쩌면 문명과 문명의 만남이라는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지금에야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이 목록을 다시 꺼내 보니, 평생 ‘음악은 문화를 담고 있다’는 신념을 품고 월드뮤직을 듣고 있는 글쓴이의 인생을 잠시나마 반추해본다. 월드뮤직은 인간 본연의 정서에 호소하는 음악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희로애락을 소리의 고저장단으로 표현한 음악이 바로 월드뮤직이다. 용어야 어떻든 그 음악이 어디엔가 있을지도 모를 지적 생명체를 만나기 위해 지금도 우주를 항해하고 있단다. 이 얼마나 짜릿한 자극인가.